"감투는 책임 주어지는 무거운 자리"
"감투는 책임 주어지는 무거운 자리"
  • 김금란 기자
  • 승인 2008.02.14 23:4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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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년 교직마감 현도사회복지대 유성종 총장
충북 교육계 거목으로 불리며 51년을 교직에 헌신해 온 꽃동네 현도사회복지대학교 유성종 총장(77).

오는 22일 이 대학 학위수여식을 마지막으로 교정을 떠난다. 유 총장의 나이 25세 되던 1957년 교직에 입문, 희수의 나이가 돼서야 겨우 학교 울타리를 벗어나는 셈이다.

5無(무욕·무적·무벌·무언·무한)를 삶의 신조로 삼고 살아왔던 유 총장은 4년전 취임식을 열지 않았듯 별도의 퇴임식을 갖지 않을 예정이다. 직무실 한 켠에 쌓여있던 1000여권의 개인 서적도 이미 이 대학 도서관에 기증해 텅 비어 있었다. 비우면 채워진다는 순리에 순응하며 살아왔던 유총장의 삶을 들어봤다.

-51년 교직생활을 마감하는 감회는.

총장 임기가 다음달 5일로 끝나지만 후임 총장의 업무에 지장을 주지 않으려 이달말로 앞당겼다. 취임식을 하지 않았던 만큼 퇴임식도 하지 않는다. 학위수여식이 끝나면 슬그머니 빠져 나가려 한다. 아쉬운 점은 나는 순수교육자이길 바랐지만 행정에 끌려다니다 보니 가짜 교육자였다. 50여년 교직 생활 중 10년만 학생들을 직접 대하는 생활을 했다. 그래서 제자라는 말을 사용하지 않는다. 제자들을 보고 지금도 동기, 동창이라고 부른다. 공적인 아쉬움은 교육감 재직시 대문호, 대학자를 교육할 수 있는 인문사회영재학교 건립을 추진하지 못한 점이다.

-68세에 꽃동네 사회복지대에 입학했는데.

당시 한 기자가 '고관까지 지냈는데 어떻게 몸을 낮출 수 있었냐'고 묻기에 역정을 낸 적이 있다. 공부하는데 장·차관이 어딨으며, 공부하는게 부끄럽고 몸을 낮추는 일이냐고. 손주뻘 되는 학생들과 공부하는 일도 기쁨이었다. 하지만 입학시험을 보는 과정에서 백지답안을 제출한 지원자가 의외로 많은 것을 보고 충격받았다. 독서를 하지 않는 요즘 청소년들의 지식적 한계의 단면을 본 것이다.

-교육계 재직시 일화에 대해.

주성중 교감 재직시절 집에 불이 났다. 교감시절이었지만 한문과목 담당 교사가 부족해 1∼3학년 수업을 맡고 있어 집으로 뛰어갈 수 없었다. 당시 서무과장이 "댁에 좀 가보시지요"하며 애처롭게 쳐다보던 눈이 아직도 생생하다. 수업을 끝내고 점심시간에 가보니 집이 온데 간데 없이 다 타버렸다. 또 일선 학교 방문때 수업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차량을 학교 안으로 가지고 들어가지 않았고, 교장좌석에 절대 앉지 않았다.

한번은 김종필씨가 공화당 총재시절 도지사를 방문했는데 도지사 좌석에 앉아 있는 모습을 방송을 통해 보고 도청 의전담당자에게 전화를 걸어 호통을 친 일도 있다.

-기억나는 은사님은.

지난해 타계하신 충북대 조건상 학장님은 돌아가시기 전까지 나를 걱정해 주신 분이다. 학생신문배달 1호라는 별명을 얻게 해준 충북대 연규행 학장님도 빼놓을 수 없다. 14세 되던 중1때 인민군에게 붙잡혀 간 나를 구해주고 지금껏 생사를 알 수 없는 은사님 등 나의 삶은 은사님들이 만들어 놓은 작품이다.

-차기 정부의 영어교육강화정책에 대해.

고교에서 영어로 수업을 진행하는 것은 해볼만하다. 다만 교사들의 능력을 고려해 성급하게 서두르면 안 된다. 교육은 하느님이 천지창조를 통해 인간을 변화시켰듯 변화를 통해 발전해야 한다. 교육감 시절 미국 캘리포니아치코대학과 자매결연을 맺고 연수 대상자를 선발하는 과정에서 20∼30년 교육경력자를 선발했다. 지금도 그렇지만 영어교사들이 숙어, 단어, 문법은 완벽한데 귀와 입이 뚫리지 않아 애를 먹었다. 연수를 다녀온 교사들이 자신감을 갖고 학생들을 대하는 모습을 보고 보람을 느꼈다.

-총선을 앞두고 감투를 바라는 후보자가 많은데.

감투는 권력, 권능, 권한을 부여받은 자리가 아니라 책임이 주어지는 무거운 자리다. 권력을 지향해 집권정당으로 몰려가는 인물들은 능력이 뛰어나도 유권자들이 찍어주면 안 된다. 하루아침에 보수가 진보가 되는 이런 웃기는 일이 어디 있는가 평생 무엇도 바라지 않고 살았다. 51세 나이에 도교육감에 선출됐을 때 책임감에 눌리면서 생각한 것이 죄짓지 않고 물러나는 일이었다. 지금에 이르러서야 높은 뫼에 먼지를 털고 큰 물에 자국을 씻는 안도감을 갖게 됐다.

-앞으로 계획은.

어떤 공직, 명예직은 맡지 않을 것이다. 몸이 허락한다면 노인복지관 등지에서 심부름이라도 하다가 생을 마감하는 게 소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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