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박한 세상 속 '삶의 희망'
각박한 세상 속 '삶의 희망'
  • 충청타임즈
  • 승인 2007.12.02 22:3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상당산성 노점상 김흥환씨
정상 부근에 '얼음골' 마련
6년째 등산객에 시원함 선사
방안 가득 감사편지 "흐뭇해"

"어! 오늘도 얼음이 있네. 더위 좀 식히면서 수건에 얼음물 좀 적셔가자. 그런데 누가 얼음을 매일 가져다 놓을까. 궁금하네."

▲ 김흥환씨(50)가 등산객들을 위한 얼음을 지게에 지고 산을 오르고 있다./유현덕기자

청주 상당산성 등산객들 숨이 턱까지 차오르는 상당산(491m) 정상부근에 이르러서 이구동성으로 내뱉는 말이다. 추운 겨울을 제외하고 매주 주말 상당산 정상부근 돌무더기 위에 놓여 있는 얼음(20) 옆에는 "시원하게 땀 닦으세요. '얼음골'"이라는 문구가 씌어진 안내문과 함께 옆에는 자그마한 우체통이 자리잡고 있다. 간혹 국화 등 계절에 맞는 꽃이 얼음주변에 장식되기도 한다.

하지만 누가 얼음을 가져다놓는지와 왜 우체통이 놓여있는지를 아는 등산객은 극히 적다.

이 얼음을 가져다놓는 주인공은 산정상에서 매주 주말 아이스크림이나 엿을 파는 노점상 김흥환씨(50·청주시 수곡동).

김씨는 지난 2002년 초여름부터 6년간 겨울철을 제외하고 매주 주말 커다란 덩치의 얼음 1∼3개를 산정상 인근 돌무더기 위에 가져다 놓고 등산객들에게 시원함을 선사해주고 있다.

김씨는 "지난 2002년 이곳에서 아이스크림을 파는 70대쯤으로 보이는 할아버지 한 분이 계셨는데 "얼음을 가져다놓으면 등산객들이 좋아할텐데"라는 말씀을 하시기에 시작한 일이 벌써 6년이 됐다"며 "등산객들이 이곳에서 얼음을 만지며 시원해 하는 게 무엇보다 좋다"고 말했다.

요즘 김씨는 매주 주말 어둠이 내려앉은 새벽 5시 30분쯤이면 어김없이 청주 석교동의 한 얼음집에서 얼음 하나를 구입한 뒤 청주 상당산성(산성동) 밑 한옥마을에서 상당산으로 이어지는 1시간 가량의 등산로를 손전등 하나에 의지한 얼음지게를 지고 오른다. 여름철에는 새벽 3시에 에 일어나 최대 3개의 얼음을 얼음골에 가져다 놓는다.

김씨는 "얼음지게를 지고 산을 오르는 게 힘들기는 하지만 얼음이 없으면 서운해 할 등산객들을 생각하면 한 번도 거르지 않게 된다"면서 "얼음 옆에 있는 우체통에 간혹 등산객들이 넣어주는 격려의 글을 읽는 재미도 쏠쏠하다"고 말했다.

실제 43(13평) 크기 김씨 집 벽은 '얼음골'에 고마움을 느낀 이들이 쪽지에 써 우체통에 넣었던 500여통의 편지가 빼곡히 장식돼 있다.

김씨의 상당산 사랑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장사를 하지 않는 주중에도 하루도 거르지 않고 산을 오른다는 김씨는 하산길이면 등산로 주변 쓰레기를 규격봉투에 담아 내려온다. 많은 비가 내려 등산로 이곳저곳이 움푹 패인 날에는 등산객들 보다 먼저 삽을 들고 올라가 메우기 작업을 하곤 한다. 등산객들을 성가시게 하는 나뭇가지며 잡풀 역시 김씨 손에 깔끔히 정리된다.

노점 이외의 직업이 없는 김씨는 "주말 장사로 번 돈은 얼음과 꽃을 사면 거의 남는 게 없지만 건강이 허락할 때까지 얼음을 가져다 놓을 생각"이라고 사람좋은 웃음을 지어 보였다.

▲ 집 벽을 장식하고 있는 등산객들의 감사편지들을 소개하며 김충환씨가 수줍게 웃고 있다./유현덕기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