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의 허물을 보지 말고,내 허물만 보라
남의 허물을 보지 말고,내 허물만 보라
  • 충청타임즈
  • 승인 2007.10.23 2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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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은 자의 목소리
전 철 호 <충북불교대학 교무처장>

가을비가 촉촉이 내리는 날, 산문을 폐쇄하고 수행하기로 유명한 문경 봉암사에 다녀왔다. 불교계의 요즘 내우외환 현실에서 누구를 탓하기 이전에 스스로의 허물을 참회하고 수행자의 본분으로 돌아가자는 자정결의를 하는 대법회에 동참했다.

신문과 방송에 비치는 불교계의 현실이 그리 바람직하지 않게 비쳐지니 불자의 한사람으로서 부끄러움을 느낀다. 일부에서는 강경대응의 목소리가 나오기도 하지만 남을 탓하고 화를 내기에 앞서 자신을 돌아보는 계기가 필요한 시기에 시의적절한 행사였다.

비가 내리는 가운데서도 스님들은 계획된 행사를 강행했다. 1만여명이 운집한 가운데 삭발염의한 스님 1000여명은 비옷도 걸치지 않은 채 내리는 비를 온몸으로 맞으며 참회와 자정의 선언을 결연하게 선포했다. 9000여명의 재가 불자들은 그런 스님들에게 경의를 표하면서 숙연한 마음으로 행사에 동참했다.

지난 1947년 부처님 법대로 살자고 하면서 청담스님과 성철스님을 비롯한 많은 스님들이 봉암사 결사 공주규약을 만들고 부처님 법대로 살자고 마음을 모았던 곳에서 봉암결사 60주년 대법회를 열어 그 뜻을 이어받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의 표출을 보면서 불교계의 희망을 보는 듯했다.

선방에서 수행 정진하는 스님들의 대표자격인 혜국스님이 "일체의 명리를 버리고 본분사에 충실하자. 수행을 생활화하고 사회화하자"는 등의 국민 각자 주어진 직분에 충실하자고 선언했다. 선방 수좌회 의장인 영진스님이 부처님 전에 10가지 참회문을 낭독하면서 모인 사부대중 1만여명이 간절하게 합장하며 절을 올리는 모습이 결연하다. 그 모습은 남을 탓하기 이전에 스스로 마음을 닦으라는 가르침을 그대로 실천하는 것이었다.

육조 혜능대사께서 '남의 허물을 보지 말고, 내 허물만 보라'고 가르침을 주셨다. 자신을 성찰하고 내 안의 잘못을 보라는 이야기다. 남 탓을 하고, 남에게 책임을 전가하려 하지 말고 자신을 깨끗이 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소중하다는 말씀이다. 그래서 불가에서는 내 마음을 잘 닦으면 누구나 부처가 될 수 있다고 하지 않았던가

스님들의 참회문에는 "지금까지 저희들은 부처님 가르침대로 살지 못했습니다. 남보다는 나를 먼저 생각했고, 수행보다는 명리를 탐하였으며, 칭찬보다는 비방을 일삼았으며, 지혜보다는 지식 얻기를 즐겼으며, 화합보다는 분열을 조장하였습니다. 이로 말미암아 수행인의 본분을 망각하고 교만과 방일만 늘어놨습니다"라고 담겨 있다.

곧, 뼈를 깎는 자기반성과 성찰의 마음이다.

행사 시작 전부터 내리던 빗줄기는 스님들의 참회와 자정의 정화수인양 산자락을 씻어 내리고, 행사를 마치고 나니 쏟아지던 빗줄기가 그쳤다. 상서로운 구름이 희양산 허리를 두르고, 맑은 가을 하늘에 청명함이 가득하다.

"한 사발의 맑은 죽이 씀바귀처럼 쓰고, 한 가닥 얇은 가사(袈裟)는 태산처럼 무겁다"라고 심경을 토로한 어느 스님의 마음에도 이젠 밝은 빛이 드리우길 바라는 마음으로 산문을 내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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