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에 바람 쐬는 이야기
책에 바람 쐬는 이야기
  • 류호철 충북문화재연구원 유물관리팀장
  • 승인 2023.08.06 1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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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의 문화유산 이야기
류호철 충북문화재연구원 유물관리팀장
류호철 충북문화재연구원 유물관리팀장

 

장마철이 지나고 바야흐로 무더위가 기승을 떨치기 시작했다.

볕은 찌르는 듯 따가운 가운데, 지난 빗줄기의 습기가 가시지 않는 듯 공기는 습하고 끈적하다.

최근 진행하고 있는 유물 임시보관처의 정기점검 현장에서 오랫동안 보관되어오던 고서류의 유물을 해포 해보니 눅눅한 것이 군데군데 곰팡이의 흔적도 보이는 듯 하다.

양지(洋紙)에 비해 옛 종이는 습기와 벌레에 너무나도 취약하다.

옛날 중요한 기록을 담은 서적들은 이러한 습해와 충해를 방지하고 오랫동안 온전히 보존하기 위해 책을 햇볕과 바람에 말리는 포쇄(曝를 정기적으로 시행했었다.

이는 단순하고 고전적인 방법이지만 옛 종이로 만들어진 고서적류의 손상 예방에 있어서는 지금도 꽤나 실효적인 방법이다.

포쇄는 쇄서포의書曝衣)라고 하여 장마철이 지난 후 칠석 무렵 책이나 옷 따위를 볕에 쪼이고 바람에 쐬어 말리는 민간의 풍속에서 비롯됐다.

우리나라에서도 『동국세시기』, 『농가월령가』 등에서 비슷한 기록을 찾아볼 수 있어, 이러한 풍속이 널리 퍼져 있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서적의 포쇄는 나라에서도 대규모 행사로 시행할 정도로 중히 여기는 일이었으며, 식년(式年)을 정하고 길일을 택하여 진행했다.

우리나라에 전래하는 공사(公私) 서적의 포쇄에 관한 기록 중 가장 오래된 것은 고려 공민왕 11년(1362) 8월의 기록이며, 홍건적이 개경을 함락시키자 왕이 복주·청주 등지로 피난 가 있을 때, 유도감찰사(유도감찰사)가 사고에 수장되었던 실록사고(실록사고)를 포쇄한 내용이다.

조선시대에는 실록의 포쇄를 엄격히 시행하여, 점검하고 그 기록을 남기기도 하였다.

포쇄를 할 때에는 사관이 사고(史庫)에 당도하여 관복의 하나인 흑단령(黑團領)을 입고 사배(四拜)한 다음 개고 하였고, 사고 내를 살펴본 뒤 책궤를 열었다.

서적을 꺼내 포쇄청(曝廳)에서 포쇄하고, 끝나면 먼지를 털고 책과 책 사이에 초주지(草注紙)를 2장씩 넣어 기름종이로 싼 다음 다시 홍보(紅褓)에 싸서 궤 속에 넣고 봉안하는데, 이때 벌레가 생기지 않도록 천궁, 창포를 함께 넣었다.

현대에는 열화된 고서적에 자외선이나 오염된 공기가 접촉되는 것을 염려하여 훈증이나, 문서소독기 등을 이용한 처리가 일반화되어 있지만, 지금도 장비가 불충분한 현장에서는 옛 포쇄와 같이 책 낱장을 넘기며 붓으로 먼지를 털고, 바람을 쐬인 후, 중성지 포장 및 방충·방균제, 혹은 습도가 높을 경우, 제습제 등과 함께 보관하는 것이 꽤나 효율적인 손상예방법이라 할 수 있다.

대부분의 요즘 서적들은 매끈하고 단단한 양지로 만들어져, 이러한 방식이 큰 의미가 없을 수도 있다.

하지만 거창하게 포쇄를 하는 것이 아니더라도, 가을이 오기 전에 먼지 쌓인 책에 바람을 쐬어주듯 한 번씩 꺼내어 보다 보면, 그동안 미뤄뒀던 책 읽기도 수월하게 할 수 있게 될런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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