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청, 527호 확정…사적기념관 건립도
22일 군과 문화재청(청장 나선화)은 ‘증평 추성산성(曾坪 杻城山城)’ 사적 527호 지정 명칭과 관련, 사적분과위원회에서 ‘신증동국여지승람’, ‘대동지지’, ‘대동여지도’ 등 조선시대 전 기간에 추성산으로 표기해 23일 자 관보에 증평 추성산성으로 명칭을 확정·고시했다고 밝혔다.
문화재청 사적분과위는 증평 추성산성 명칭이 조선시대 전 시기에 ‘추성산’이란 명칭을 사용했고 하남 이성산성(사적 422호)과 명칭이 중복하는 점을 고려해 ‘증평 추성산성’이 타당한 것으로 판단했다.
추성산(杻城山)의 ‘杻’는 수갑 추, 싸리나무 뉴의 훈과 음을 지녔지만 산 정상부의 두 봉우리를 감싼 수갑과 같은 형상이을 띠고 있어‘추’로 발음하는 게 타당하다고 분석했다.
이성산(二城山) 명칭은 당초 일제 강점기에 편찬한 ‘조선환여승람’(1937년)에 표기한 것으로 알려졌고 1899년에 발간한 ‘청안군읍지’에 처음 기록했다.
추성산에 대한 최초의 기록인 ‘대동지지’(1863년)는 ‘道安古城在杻城山有遺址(도안고성재뉴성산유유지)’라고 적었다.
‘신증동국여지승람’(1530년) 청안현 조에는 ‘추성백우(杻城白雨)’란 진의귀(~1424)의 사(詞)가 있고 추성산의 산성을 처음 언급하고 있다.
사적분과위는 사적 지정예고 기간 동안 일부에서 문화재 명칭을 이성산성이 아닌 추성산성이라 한 것에 반론을 제기했지만 받아들이지 않고 명칭을 확정했다.
이처럼 증평 추성산성은 지방에 존재하는 가장 큰 규모의 4~5세기 한성백제 시기 토축(土築) 산성으로 내성(內城)과 외성(外城)의 이중 구조인 남성(南城)과 북성(北城)의 독특한 배치를 이루고 있다.
군은 이와 연계해 문화재청이 사적 527호로 지정한 ‘증평 추성산성(曾坪 杻城山城)’ 사적 기념관을 건립하기로 했다.
저작권자 © 충청타임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