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평 추성산성 국가지정문화재 됐다
증평 추성산성 국가지정문화재 됐다
  • 심영선 기자
  • 승인 2014.01.22 1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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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청, 527호 확정…사적기념관 건립도
증평군이 도안면 노암리 일원에서 발굴한 백제한성 시기 토축 산성이 ‘이성산성’과 ‘추성산성’ 명칭 논란에 종지부를 찍고 국가지정문화재로 최종 확정됐다.

22일 군과 문화재청(청장 나선화)은 ‘증평 추성산성(曾坪 杻城山城)’ 사적 527호 지정 명칭과 관련, 사적분과위원회에서 ‘신증동국여지승람’, ‘대동지지’, ‘대동여지도’ 등 조선시대 전 기간에 추성산으로 표기해 23일 자 관보에 증평 추성산성으로 명칭을 확정·고시했다고 밝혔다.

문화재청 사적분과위는 증평 추성산성 명칭이 조선시대 전 시기에 ‘추성산’이란 명칭을 사용했고 하남 이성산성(사적 422호)과 명칭이 중복하는 점을 고려해 ‘증평 추성산성’이 타당한 것으로 판단했다.

추성산(杻城山)의 ‘杻’는 수갑 추, 싸리나무 뉴의 훈과 음을 지녔지만 산 정상부의 두 봉우리를 감싼 수갑과 같은 형상이을 띠고 있어‘추’로 발음하는 게 타당하다고 분석했다.

이성산(二城山) 명칭은 당초 일제 강점기에 편찬한 ‘조선환여승람’(1937년)에 표기한 것으로 알려졌고 1899년에 발간한 ‘청안군읍지’에 처음 기록했다.

추성산에 대한 최초의 기록인 ‘대동지지’(1863년)는 ‘道安古城在杻城山有遺址(도안고성재뉴성산유유지)’라고 적었다.

‘신증동국여지승람’(1530년) 청안현 조에는 ‘추성백우(杻城白雨)’란 진의귀(~1424)의 사(詞)가 있고 추성산의 산성을 처음 언급하고 있다.

사적분과위는 사적 지정예고 기간 동안 일부에서 문화재 명칭을 이성산성이 아닌 추성산성이라 한 것에 반론을 제기했지만 받아들이지 않고 명칭을 확정했다.

이처럼 증평 추성산성은 지방에 존재하는 가장 큰 규모의 4~5세기 한성백제 시기 토축(土築) 산성으로 내성(內城)과 외성(外城)의 이중 구조인 남성(南城)과 북성(北城)의 독특한 배치를 이루고 있다.

군은 이와 연계해 문화재청이 사적 527호로 지정한 ‘증평 추성산성(曾坪 杻城山城)’ 사적 기념관을 건립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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