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 원도심, 일단 저지르고 ‘보자’
천안 원도심, 일단 저지르고 ‘보자’
  • 조한필 기자
  • 승인 2013.04.24 21: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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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의 주장
조한필 부국장(천안·아산)

“중학생 때(1990년대 초반)는 약속장소가 항상 명동거리였는데, 고등학생이 돼선 친구들과 신부동으로 약속 장소를 옮기기 시작해 대학생이 된 후는 명동거리 대신 신부동에서 주로 만났다.” 대학 96학번인 30대 중반 천안 출신 기자의 기억이다.

천안역 앞 명동거리에도 극장이 서너 개 있었지만 신부동에 버스터미널과 현대식 시네마가 들어서면서 젊은이들 발길이 이동한 것이다. 그러다 시청사가 2005년 불당동으로 이전하면서 명동거리는 결정타를 맞았다.

예전엔 어깨를 부딪칠 정도로 북적거렸다는 거리가 밤만 되면 인적이 끊겨 휑한 거리로 변했다. 10여년간 상인ㆍ천안시 모두 뼈를 깎는 재생의 노력을 펴지 않은 것도 이유였다.

지난 22일 시가 2000만원을 들인 명동거리 활성화 방안 연구용역 중간 보고회가 열렸다. “명동거리를 살리려면 ‘문화’를 입혀야 한다”는 게 결론이었다. 뭔가 볼 게 있고 색다른 느낌을 주는 감성적 공간이 돼야 한다. 그래야 유흥, 오락, 대형쇼핑몰이 있는 신도심상권으로 가는 발길을 잡을 수 있다는 것이다.

너무나 당연하고 늘상 해 온 얘기일 수 있다. 두 달만에 나온 활성화 추진방향과 사업내용은 화려했다. 수식어도 멋졌다.

상권 브랜드명은 ‘명동 타임스퀘어’. 음식점은 패스트푸드가 아니라 슬로우 푸드로 두정동 먹자골목과 차별화한다. 지역 유기농가와 연결된 건강 메뉴, 특이한 레시피의 음식이 모이는 곳이다.

저층 건물 옥상을 연결한 ‘스카이 가든’, 그 밑으로 시민이 직접 조경에 참여하는 ‘시민愛 거리’, 시민들이 만든 작품을 전시하고 매매하는 미디어 갤러리 ‘아티젠(Art+Citizen)’등이 조성된다.

아티스트를 위한 20개 스튜디오는 시가 임대한 빈 상가를 예술가들 작업 공간으로 제공해, 그들이 전시ㆍ공연 등 문화콘텐츠를 명동거리에 제공하도록 하는 것이다. 서울 문래창작촌 등이 모델이다. 공예ㆍ의류ㆍ음식의 명인들을 유치해 문화공방 클러스터를 조성해 주자. 이른바 ‘명동 명방(名方)’. 명동거리 바닥(190m)은 매년 주제를 바꾼 거리페인팅으로 변화무쌍한 모습을 보여주자.

용역 발표를 들으면서 꿈 같은 원도심 재탄생을 떠올리는데….

“이제야 활성화 운운하니 참담할 뿐이다.” “하루하루 버티기도 힘든데 언제까지 기다려야 하나.” 보고회에 참석한 상인들의 원망 섞인 목소리가 귓전을 때렸다.

‘명동거리의 문화상권화’라는 총론에는 이론이 없다. 실현되려면 많은 예산과 시간, 상인들 합의가 필요한 지난한 사업이다. 연구용역은 항상 그렇듯이 이상형(ideal type) 제시에 불과하다.

상인들을 말했다. 거리 보도불럭을 대리석을 깔고 가로등도 고급화해 달라. 동남구청 옆 지상주차장을 상인들이 운영하도록 해달라. 올 추가경정예산에 반영해 살길을 열어달라.

외형 치장은 미봉책일 뿐이다. 명동거리 500m 인근 인구가 겨우 1만2000명이라 먼 곳 주민을 끌어와야 한다. 업종(음식ㆍ패션)이 신상권과 비슷하니 색다른 감성충족 콘텐츠가 있어야 한다. 볼 게 있고, 독특한 분위기가 있어야 한다는 소리다.

용역대로 마스터 플랜 세워 진행하려면 하세월이다. 예산도 불투명하다. ‘문화상권’ 건설로 합의됐으면 실험적 사업(pilot project)부터 저질러 보자. 예술가 스튜디오 마련이 가장 쉽다. 시민들이 어떻게 반응하는지 모니터링하면서 변화의 방향을 찾아보자. 상인도 변해야 한다. 시만 바라보지 말고 내가 어떻게 변해야 살지 고민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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