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영덕의 실크로드 견문록 < 23 >
함영덕의 실크로드 견문록 < 23 >
  • 충청타임즈
  • 승인 2006.06.14 1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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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리석의 고향 따리(大理)
노 저으며 고기잡는 풍경으로 아침을 열다

▲얼하이는 따리시 동쪽 2km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으며, 남북 길이는 약 40km, 동서 넓이 5~8km 쯤 되는 호수로 모양이 사람의 귀처럼 생겼다고해서 이해라고 부르며 위난성에서 두번째로 큰 호수다. ⓒ 함영덕

오후 6시 20분 열차에서 내려 버스를 두 번 갈아타고 쿤밍 전싱(根興.근흥)호텔을 찾아 구어쵸미센(過校米線.과교미선)을 주문했다. 쿤밍의 명물인 구어쵸미센을 시켜놓고도 배탈이 날까봐 제대로 먹을 수가 없었다. 쌀국수의 일종이며 땀이 날 정도로 매운데 내 입맛에는 그다지 맞지 않았다. 하루 종일 죽 한 그릇과 물만 마시며 보냈다. 더위를 먹어서 그런지 식욕도 없고 배도 고프지 않았다.

쿤밍에서 따리행 기차를 잡지 못했다. 대신 저녁 8시 20분발 야간 버스에 올랐다. 버스 안은 가운데 통로를 중심으로 좌우로 2층 침상을 만들어 누워서 잘 수 있도록 되어있다. 버스 안에서 1시간 20분을 기다린 끝에 밤 9시 40분 따리행 버스가 출발하였다. 밤새 흔들리는 차 칸에서 잠이 오지 않았다. 열차 침대칸은 흔들리지 않아 잠을 자기가 편리하지만 버스는 공간도 없이 빠듯하여 배에 손을 얹고 밤새도록 흔들리며 누워 있어야 했다. 새벽 3시 이후에야 토막잠을 두세 번 잘 수 있었다.

다음날 새벽 6시 경, 8시간의 야간 버스여행을 마치고 따리 버스터미널에 도착했다. 터미널에서 짐을 맡기고 따리 고성(古城)으로 출발했다. 시내는 깨끗하고 조용했다. 30분쯤 달려 고성에 도착했다. 고성으로 들어가는 길 양 옆에는 과거 대리국 사람들이 살던 전통가옥들이 늘어서 있다. 가옥들의 정면과 이층 유리문에 각종 꽃과 동물 형상의 문양을 정교하게 조각하여 문화의 고장임을 보여주고 있다.

따리는 윈난성 서부에 위치하고 있으며 당나라 때에는 남조국(南詔國), 송나라 때 대리국(大理國)의 도읍지로 번성하였던 곳이다. 1254년 몽고의 말발굽 아래 굴복하기까지 350년간 독자적인 왕국을 유지하였다. 현재는 3,000년간 고향을 지킨 바이족(白族)들의 자치주로 주로 농업에 종사하고 있다.

청산에서 채취되는 대리석 유명

▲대리국 고성 입구 남쪽에 들어서면 대리석면에 청색을 주색으로 한 아름다운 꽃무늬 장식을 한 오화루가 손님을 맞이하고 있다. ⓒ 함영덕교수

따리는 대리석의 고향이다. 창산 대리석, 차이화석(采花石.채화석),윈후이스(云灰石.운회석),바이스(白石), 머스(黑石.흑석)등의 품종이 있다. 따리의 서쪽에 있는 창산(蒼山)에서 채취되는 대리석이 유명하여 이곳의 지명을 따서 대리석이란 돌 이름을 지었다 한다. 따리는 서쪽으로 창산산맥이 뻗쳐있고 반대편으로는 바다와 같은 얼하이(이해)가 남북으로 길게 펼쳐져있는 아담한 도시다.

아름다운 대리국 고성의 입구를 들어서면 기념품 가게가 나타난다. 남문으로 들어서면 팔작지붕의 3층 누각이 경쾌하게 솟아있다. 대리석면에 청색을 주색으로 한 아름다운 꽃무늬를 장식한 오화루(五華樓)가 손님을 맞이하고 있다. 고성 안을 조금 걸으니 따리문화원이 나타났다. 청 녹색을 바탕으로 한 현관 처마와 공포가 아름다웠다. 뜰 마당엔 검무를 배우는 사람들과 춤을 배우는 아줌마들, 마당 한 켠엔 노인들이 카드놀이에 열중하고 있다.

아침에 죽을 찾았으나 바이족들은 죽을 싫어해서 죽은 없었다. 대신 옥수수죽 같은 바이족 전통음식을 시켰는데 입에 맞지 않아 반쯤 밖에 먹지 못했다. 이제는 입맛까지 잃어 느끼한 중국음식만 보아도 냄새가 나서 토할 것만 같다. 따리도 2,000m 고원지대라 병이 나면 잘 낫지가 않는다. 나는 끝까지 약을 먹지 않기로 했다. 그게 감기를 다스리는 내 방식이고 지난 20년 동안 아주 심한 경우가 아니면 감기약을 먹어 본 기억이 손꼽을 정도였다. 구이린의 양수오에서 밤새도록 머리맡에서 돌아간 에어컨 덕분에 고원지대에서 오뉴월 감기로 이 고생을 하는구나 생각하니 한심한 생각이 들었다. 때문에 답사기간 내내 아무리 더워도 에어컨을 틀지 않았다.

30분쯤 말을 타고 얼하이로 향해

오후 1시간 30분쯤 고성의 이모저모를 구경하고 북문으로 나왔다. 남문과 비슷한 구조였는데 입구에 해태 2마리가 서 있는 게 특징이다, 북문 앞에서 마차를 타고 얼하이로 향했다. 자갈길과 판자촌 길옆을 돌아 넓은 논과 벌판을 지나면서 성 밖의 바이족들의 생활상을 볼 수 있어 마차를 타는 것이 훨씬 좋은 것 같다. 30분쯤 달려 얼하이에 도착했다.

얼하이는 따리시 동쪽 2km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으며 남북 길이는 약 40km, 동서 넓이 5-8km쯤 되는 호수로 모양이 사람의 귀처럼 생겼다고 해서 이해라고 부르며 윈난성에서 2번째로 큰 호수다. 검푸른 호수의 물결이 가슴을 확 트이게 한다. 호수의 북쪽을 바라보니 끝이 보이지 않는다. 호수라기보다는 바다처럼 느껴졌다. 여기에 와서야 비로소 바다(海)로 칭하는 이유를 알 것 같다.

호숫가에는 유람선들이 늘어서 있고 주변에는 오리 떼 들이 한가롭게 헤엄을 치고 있다. 2,000m의 고원지대라 그런지 중국의 호수치고는 비교적 물이 맑은 편이다. 남쪽은 산들이 안개 속에 묻혀 희미한 윤곽만 보였다. 호수바다 앞에 길게 누운 산맥들이 여인의 허벅지 처럼 부드럽게 뻗어있다. 관광객이 많지 않아 80元 부르는 배 삯을 45元에 흥정하여 탔다. 가격도 그때의 상황에 따라 변하므로 요구하는 대로 주지 않는 것이 좋다. 깎을 수 있는데 까지 최대한 협상을 하는 것이 유리하다.

아침 물결에 건져 올리는 그물과 점점이 떠 있는 고기잡이 어선들이 눈부신 햇살 속에 출렁거리고 있다. 호수 양 옆 높은 산맥들이 겹겹이 흘러내리고 점점이 흩어진 호숫가엔 마을들이 옹기종기 평화롭게 무리지어 있다. 뱃머리에 앉아 산 능선 쪽으로 아물거리는 누각을 바라보았다. 천경각(天鏡閣)이 서서히 윤곽을 드러내고 있다. 커다란 유람선이 물살을 가르며 다가오고 있다.

눈을 감아 본다. 어젯밤 잠을 설친 탓인지 햇살에 눈을 뜨기가 힘들었다. 뱃머리에 흔들려 몸은 호수물결처럼 넘실대고 있다. 수십 척의 돛단배들이 옹기종기 흩어져 노를 저으며 고기잡이하는 풍경은 눈부신 아침 바다를 여는 한 폭의 그림 같다.

관음여신보살 앞 부처가 팔베개

배에서 내려 산정으로 계단을 오르면 팔선루(八仙樓)란 낡은 2층 고옥이 나타난다. 오른쪽 관음각(觀音閣)엔 관세음보살상 3좌가 안치되어 있고 기념품 가게가 즐비하게 늘어서 있다. 악세사리 가계와 고기 굽는 냄새가 진동하는 계단을 오르면 작고 둥근 연못이 나타난다. 천경각 앞 계단 가운데는 막 비상할 듯한 돌로 새긴 용무늬 조각이 있다. 천경각 안으로 들어가면 흰옷에 밤색 도포를 어깨에 두른 관음여신 좌우에 남녀 동자와 소녀가 서 있다.

관음여신이 호로병을 왼손으로 받치고 앉아 있고 그 앞에 석가모니 부처님이 오른쪽 팔베개를 하고 있는 특이한 그림이다. 관리인에게 여신의 이름을 물었더니 그들의 전통신앙 속에 자리 잡고 있는 바이족을 지켜주는 수호여신이란다. 관음여신보살 앞에 부처가 팔베개를 하고 있는 이런 유형의 탱화는 처음이라 매우 호기심이 일었다. / 시인·극동정보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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