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혹’의 난계국악축제
‘불혹’의 난계국악축제
  • 권혁두 국장<영동>
  • 승인 2011.10.10 1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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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9일 막을 내린 44회 영동난계국악축제의 피날레는 록 그룹 ‘부활’이 장식했다. 걸출한 록스타 김태원이 이끄는 부활의 공연은 무대 열기와 객석의 호응만으로도 이번 축제의 백미요 압권이었다. 1시간 동안 관객과 뜨겁게 교류하며 진행된 콘서트는 수차례 앙코르를 이끌어내며 군민운동장을 뜨겁게 달궜다. 그러나 열정적인 공연의 뒷끝은 씁쓸했다. 명색이 대한민국을 대표한다는 국악축제의 폐막공연이 록 밴드의 몫이라니. 더욱이 무대의 전면에는 ‘난계 박연의 꿈’이라는 구호가 선명했다. 전자 악기의 거친 음향과 국악 중에서도 정통에 몰두했던 ‘박연의 꿈’은 연계점을 찾기 어려웠다.

난계국악축제가 무대를 대중가수들에게 내준 이유는 한 가지다. 사람들을 불러모으기 위해서다. 대중성이 떨어지는 국악공연장의 객석은 늘 썰렁했다. 국악 부흥의 의지와 기치가 아무리 높고 순수하더라도 사람들이 찾지 않는 무대를 양산해 낸다면 그 축제는 실패작이다. 고민 끝에 대중가수들의 지원을 받기 시작했고, 국악축제를 보완하던 가수들이 이젠 주인 자리를 차지하게 된 것이다. 그렇다고 국악공연이 없는 것은 아니다. 올해도 난계국악단을 비롯해 퓨전국악팀과 전통공연단 등이 초청되긴 했다. 그러나 중량감은 느껴지지 않았고, 한낮의 보조무대만 떠맡는 팀도 적잖았다. 트로트에서 발라드, 댄스에 록까지 아우른 대중음악의 다양한 구성과 비교하면 그야말로 ‘조족지혈’이었다.

난계국악축제보다 1주일 앞서 전주시에서 열린 전주세계소리축제의 폐막공연은 ‘콘서트 춘향전’이었다. 이 공연은 퓨전국악과 국악관현악, 무용에 비보이까지 버무려 기발한 버전의 21세기 춘향전을 선보였다. 개막공연 ‘이리 오너라, Up Go 놀자’ 역시 뮤지컬과 재즈까지 아우른 퓨전이었다. 그래도 두 공연의 중심에는 축제 타이틀인 판소리 등 국악 장르가 포진됐다. 유료공연임에도 불구하고 2000석이 넘는 입장권이 매진됐다. 축제기간 선보인 38개 공연의 평균 좌석점유율이 85.7%에 이르고 15개 공연은 매진을 기록했다고 한다. 돈 내고 보는 유료좌석 점유율도 55.5%에 달했다니 예산도 적잖게 절감했을 것이다.

물론 인구 63만의 전주시와 5만명대의 영동군 축제를 지역세를 무시한 채 평면 비교하는 것은 무리이다. 객석을 채울 인프라나 예산, 접근성, 홍보역량 등에서 격차는 부인할 수 없다. 영동군이 40년 이상 국악축제를 이어온 자체만으로도 대견한 일이다. 그렇더라도 이제는 축제에서 불혹의 경륜이 묻어나야 할 때가 됐다. 예산도 적은 것이 아니다. 이번 4일간 축제에 투입된 예산은 전야제 행사로 개최한 추풍령가요제와 와인축제 예산을 합쳐 10억원이 넘는다. 웬만한 군 단위 지자체 1년 축제예산과 맞먹는다. 공연을 나열하는 식의 안일한 기획에서 탈피해 새로운 패러다임을 시도할 만한 여건이 갖춰졌다는 얘기다.

전주소리축제가 국악축제로서 정체성을 유지하면서도 흥행에서 나름의 성공을 거둔 것은 단순 공연이 아니라 기획공연으로 승부했기 때문이다. 올해는 예술감독 박칼린과 작곡가 김형석이 공동집행위원장을 맡았다. 무대 연출과 구성, 음악 선정에 한국 최고의 전문성을 도입한 것이다. 관객 동원력이 있는 대중가수와 공연팀을 섭외하고 일정만 조정하는 일은 누구라도 할 수 있다. 공연에만 투자할 것이 아니라 축제의 방향을 정립하고 무대를 꾸며줄 전문적인 식견과 테크닉에 투자해야 한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예향으로 꼽히는 전주시가 외부에서 축제 집행위원장을 위촉한 것은 국악축제가 국악 선양과 흥행을 동시에 충족하기가 그만큼 어렵다는 반증이다.

난계국악축제도 이 관문을 넘지 못하면 앞으로 국악축제로서 영속성을 갖기 어렵다. 내년부터는 노력하는 흔적이라도 보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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