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나없이 힘들다, 지쳤다, 고달프다,/ 심지어 화가 난다고까지 말을 한다.//’
나의 의지와 노력과는 무관하게 일어난 사건들로 인한 스트레스는 그 임계치를 넘은 듯, 황당함과 우울함을 넘어 이제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냉소와 비관주의의 갑옷을 두르는 경지를 경험한다. 시인은 다시 문단을 바꾸어 이어간다. ‘그렇지만 이 대목에서도/ 우리가 마땅히 기댈 말과/ 부탁할 마음은 ‘그럼에도 불구하고’//(나태주, ‘그럼에도 불구하고’ 中)’
# 스토아적 태도와 선택
고대 로마 스토아 철학자 에픽테토스(Epictecus, AC50-130)는 행복의 3가지 원천으로 유전, 환경, 태도가 있다고 했다. 여기서 유전과 환경은 내 힘 안에 있는 능력이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이것들을 의지하거나 중요시하게 되면 늘 불만족하고 불행해진다고 했다. 그러나 태도는 내 힘 안에 있는 것으로 내 스스로 통제할 수 있는 것이라고 했다.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유전적 요인과 환경요인을 내가 통제할 수 있는 요인, 즉 두 가지 요인에 대한 태도를 어떻게 가지느냐가 그 사람의 행복을 결정짓다는 것이다.
’담화록‘에서 에픽테토스는 제우스마저도 인간이 가진 선택의 자유를 빼앗을 수 없다고 마하며 오직 선택에 집중해야 함을 요구하였다. 환경 탓으로 돌리지 말고 이성에 따라 올바른 선택에 전심함을 강조하였다. 이러한 이성적 선택의 범위 안에서 살게 되면 두려울 것이 없다고 한다. 그리고 자신이 어찌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구분하라고 하며, 인생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권한에만 노력하되 내가 할 수 없는 것들은 모두 신에게 맡겨라.’라고 했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실을 보고 주변을 보니 비관적이 된 것이지 나라고 그러고 싶어서 이렇게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고 항변하는 젊은 직장동료들과의 대면. 그 말은 일부는 사실일 것이다.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정치, 학부모, 학생 등의 환경요인에 대한 그의 태도는 ‘어차피 내가 노력해봤자…’ 로 이어졌다. 그들의 냉소와 비관은 주변 사람들의 생의 에너지를 갉아먹는 듯하다.
그들도 좋아서 그런 태도, 그런 선택을 할 것은 아닐 것이다. 다만 그들은 쉬운 선택을 했을 수는 있다. 이 길은 비교적 쉽고 편안하기에 더욱 매력적인 길로 보일 수 있다. 나의 외모와 가족력 등으로 삶과 사람들을 냉소하고 비난하고 경멸하고 회피하는 것은 지금 당장 누구든 할 수 있다. 쉬운 길이다.
‘불구(不拘)하고’는 다른 것에 얽매이지 않는다는 뜻이다. 에픽테토스적 철학을 따른다면 지금 이러한 비극적 환경에서도 주변을 탓하지 않고 거기에 얽매이지 않으며 어려운 길을 선택할 수 있음은 당신의 자유다. 그리고 어려운 길이 더 유익하다. 왜냐하면 행복은 내게 주어진 능력치보다 더 도전적이고 어려운 과제를 해결하려고 집중할 때 찾아오기 때문이다. 그 무엇보다도 어려운 그 길이 유한한 우리네 삶에 더 어울린다. 인류역사와 철학자들은 그 유익함을 증명하고 있다.
시인 나태주는 서두의 시를 다음과 같이 맺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밥을 먹어야 하고 아낌없이 사랑해야 하고 조금은 더 참아낼 줄 알아야 한다. 그것은 날마다 아침이 오는 까닭이고 봄과 가을 사계절이 있는 까닭이고 어린 것들이 우리와 함께하는 이유이다.’
쉬운 듯 보이지만 어려운 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상을 이어가는 일.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존엄성을 지키며 책임 있게 내 인생을 살아내는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환경을 정돈하고 내 자리에 어울리는 태도와 기세를 가지고 할 수 있는 노력을 다하며 턱을 치켜들고 당당히 살아내는 것. 어린 것들이 우리와 함께하고 있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