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엉 뿌리 차
우엉 뿌리 차
  • 이연 꽃차소믈리에
  • 승인 2025.01.14 1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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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문앞에서

매서운 추위에 외출할 엄두를 내지 못하고 대부분 시간을 베란다 정원에서 차(茶)를 즐기며 보내고 있다. 밖의 추위는 아랑곳없다는 듯 제라늄이 활짝 피어나 계절을 잠시나마 잊게 해준다. 창문을 경계로 바깥쪽은 엄동설한 겨울인데 안쪽은 꽃이 만발한 봄의 어느 날 같다. 전혀 다른 풍경을 바라보면 언제나 신기하다. 한겨울에도 하루 종일 해를 집안에 들일 수 있는 막힌 데 없는 정남향 집의 혜택을 톡톡히 누리며 살아가고 있다.

찻물을 끓여 다관에 물을 붓는다. 갈색으로 우러난 찻물을 바라보며 “오! 구수하겠는걸” 한 모금 마시며 “으음 역시 우엉차는 구수하고 좋아” 연신 혼잣말을 하는 내가 멋쩍어 피식 웃는다. 나이가 들면 혼잣말 대 잔치를 하며 살아간다고 하더니 나도 그런 나이가 되었나 보다. 오늘도 베란다에서 나를 반겨주는 식물들과 눈맞춤을 하며 찻잔을 손에 들고 열심히 수다를 떠는 중이다.

우엉은 쓰임새가 많은 뿌리채소다. 흔히 조림으로 많이 만들어 먹기도 하고 김밥에 빠지지 않고 들어가는 식재료이기도 하다. 이렇게 쓰임이 많은 우엉을 뿌리 부분만 알고 있다. 잎이 어떻게 생겼는지, 꽃은 어찌 피는지, 더구나 그 긴 뿌리를 무슨 수로 땅에서 캐어내는지조차도 모르고 있다. 우엉조림을 할 때나, 우엉차를 덖을 때면 늘 잎의 생김이 궁금했다. 우엉을 재배하는 것을 단 한 번도 본 적 없으니 별수 없이 만물 상자인 인터넷을 검색했다. 잎은 머위와 흡사하고 꽃은 엉겅퀴꽃과 비슷했다. 그리고 수확 철이면 긴 뿌리는 중장비를 동원해서 어렵게 캐어낸다는 것을 알아냈다.

그래서일까. 내가 잘 알고 있는 꽃을 덖을 때 와는 느낌이 조금 다르다. 우엉이 지닌 성분들을 이야기하면서도 늘 반쪽만 알고 있는 느낌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 그럼에도 우엉차의 구수한 맛은 언제나 정겹고 편안하다. 우엉차를 마시다 보면 그 옛날 엄마가 가마솥의 밥을 다 푸고 난 후, 잔불에 누룽지를 끓여낸 숭늉 맛이 자꾸만 떠오른다. 우엉차는 맛으로도, 향으로도 누구나 부담 없이 편하게 즐길 수 있는 차이기도 하다.

나도 최근 들어 혈관 건강, 체중 관리, 면역력 강화를 위해 즐겨 마시고 있다. 우엉은 사포닌, 이눌린, 식이 섬유, 미네랄 함량이 풍부해서 장내 유익균을 활성화해 독소를 배출하여 성인병 예방과 다이어트에도 효과가 있다. 또한 몸에 열이 많은 사람, 염증, 피부염, 알레르기, 아토피를 개선해주는 건강 차로서 가치가 매우 높다.

우엉을 차로 덖는 방법도 그다지 어렵지 않다. 우엉을 깨끗하게 씻어 얇고 납작하게 썰어 하루 정도 꾸들꾸들 말린다. 그리고 반드시 기름기 없는 팬에 여러 번 덖음과 식힘을 반복해서 수분을 날리면 된다. 가끔 반찬 만들 듯 한 번에 차를 덖었다고 자랑하는 사람들이 있다. 물론 손수 만든 수고는 훌륭 하지만 ‘구증구포’란 말이 왜 있는지, 기왕이면 맛도 향도 깊은 차가 좋지 않을까?

다시 찻잔에 차를 따랐다. 오늘은 창문을 경계로 엄동설한 겨울 풍경과 안쪽 베란다의 봄을 닮은 풍경에 구수한 향이 일품인 우엉차의 향기를 덧대며 하루를 보낸다. 돌아올 봄날에는 우엉 씨앗을 파종해볼 궁리를 해보며 우엉차의 구수한 향기에 또 혼잣말이 절로 나온다.

“으음 역시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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