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책하는 법
산책하는 법
  • 김현숙 중원교육문화원 팀장
  • 승인 2024.11.18 18:0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예쁜 계절이다. 빨갛고 노랗고 갈색 잎이 떨어진 가로수길을 새소리 듣고 흙냄새를 맡으며 걷는 산책길이 즐겁다.

언제부터인가 산책이 좋다. 천천히 걸으며 차로 이동할 때 보지 못했던 작은 무언가를 발견하는 즐거움, 왁자지껄 떠드는 사람들을 도로 건너에서 바라보며 어떤 것에서 한 걸음 뒤로 떨어져 있으며 느껴지는 냉철함, 보강천변을 걷는 중 자연의 소리를 들으며 드는 편안함 등 걷는 동안 마음속 깊이 있는 감정을 만나기도 하고, 복잡한 생각은 정리가 되어 마음이 평온해진다.

자료실 근무 중 평소 관심 있던 출판사에서 발행한 인문 교양서를 만났다. 관심 있는 분야, 직관적인 제목으로, 그리고 작고 얇은 판형으로 출판하는 곳이다.

이 출판사에서 발간한 `산책하는 법'(카를 고틀로프 셸레 지음·유유출판사)이 눈에 들어왔다. 요즘 산책의 매력에 빠진 나는 단숨에 책장을 넘긴다.

많은 철학자가 걷기를 사랑했지만, 산책에 관해 깊이 성찰한 철학자는 드물다. 책은 미적 운동으로서 즐기는 산책의 기술을 알려준다.

아무 생각 없이 움직이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너무 진지해지지 않는 `유쾌한 놀이'로서 산책을 즐기는 방법에 관해 이야기한다.

다양한 장소에서 균형 잡힌 방식으로 산책을 하면 신체와 지성을 동시에 돌볼 수 있다고 말하며 자연과 도시 산책은 어떻게 다른지, 산과 계곡, 숲, 정원에서의 산책은 또 어떻게 다른지 세세히 알려준다. 다양한 산책의 모습을 알려주는 책이다.

산책과 걷기를 구분하기도 한다. 산책은 걷기와 달리 느리고 고요하며 자연과 주변 환경에 따라 그 의미를 달리한다. 그 이면에는 자연과의 교감이 있고 이는 내면의 사색과 성찰로 이어진다고 한다. 살을 빼는 등의 목적이 있는 걷기와는 다르다고 책은 말한다.

산책하면서 자연의 아름다움과 변화를 깨닫고 동시에 결국 나에 대한 감각을 되찾을 수 있다는 것을 이야기한다. 작가는 철학이 절실히 필요한 세상에 철학을 소개하는 데 작게나마 역할을 하고자 이 책을 썼다고 밝힌다.

책이나 일에서만이 아니라 주변에서 철학적 깨달음을 얻고 하루하루 새로운 발견을 할 수 있다면 산책이 주는 많은 좋은 점에 더하여 또 하나의 이점이 될 수도 있겠다. 산책 에세이의 고전! 산책에 관한 뻔한 이야기이지만 19세기 철학자의 생각을 엿볼 수 있는 책이다.

책의 저자가 살던 19세기 독일도 고도로 발달된 예술과 인간관계, 복잡하게 얽힌 문화 때문에 정신은 스스로의 참모습을 찾아가기 어렵다고 기술한 부분을 보고 1만5000여 년 전 알타미라 동굴의 벽화에 새겨진 `요즘 것들'의 버릇없음을 탄식하는 내용이 떠올라 피식 웃어본다.

그때보다 더 바쁘게 살아가는 우리는 자연과 더불어 자신의 참모습을 알아가기 위해 산책을 꼭 해야 할 것 같다.

집 앞 은행나무가 앙상해지기 전에 동네 한 바퀴 돌아야겠다. 노란 카펫 위를 폭신하게 걸으며 자연의 냄새에 킁킁거린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