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강
남한강
  • 정인영 사진가
  • 승인 2024.11.18 1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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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강원도 오대산에서 발원한 한강은 충청북도를 거쳐 경기도 남양주에서 북한강과 합류하여, 서울을 지나 서해바다로 흘러간다. 한강이 충청북도 단양과 충주를 지나 여주를 흐르는 줄기를 남한강이라 부른다.

내가 태어나고 자란 마을앞을 흐르면서 나의 어린 시절을 보듬어 위로해준 남한강은 늘 정신적 지주였다.

하늘에 종달새 날아올라 봄햇살 부르면 가녀린 물비늘 춤추던 시간 언제 가는지 모를 철부지 때에 강변 조약돌 모두가 나의 친구였다.

하루 해가 저물면 강물도 잠을 자니 어스름 길을 찾아 집으로 돌아가곤 했다. 안개내린 강물위로 떠오른 햇빛 어리면 여울물 힘차게 소리내어 세상을 깨우면서 아름다운 산과 강이 한폭의 그림이었다.

눈에 보이는 것 모두가 좋으니 내 마음 또한 티없이 맑아 매일 매일이 즐거웠고, 하루 온 종일 시간 가는줄 모르고 살면서 작은 얼굴에 웃음이 떠날 날이 없었다.

그렇게 이어지던 날들이 초등학교 6학년이 절반될 무렵부터 무너지고 있었다. 기대했던 중학교가 멀어져 나는 앞으로 어떻게 되는건가에, 그 때까지 한번도 없었던 고민이 스멀스멀 기어나오고 있기에….

어린 마음에 가난이 이런 것인가 했는데 알고 보니 실제였다. 얼마 되지 않는 논과 밭, 자그마한 초가집이 전부였고, 아버지 어머니가 열심히 일하시면서 어려운 살림 힘들게 꾸려가시고….

워낙 가난하여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글방 한문공부도 6개월에 중도포기했다. 천성적으로 몸이 약해 일은 꿈도 꾸지 못하고 그저 집에서 하릴없이 낮과 밤을 대책없이 보내는 것으로 한심한 고민만 쌓여갔다.

문득 강이 보고 싶었다. 한동안 잊고 있던터라 벌떡 일어나 강에게로 갔다. 강은 여전히 흐르고 있었지만 어제의 강이 아닌 것 같았다. 잔잔했던 수면이 사납게 흔들리면서 무어라 나에게 말을 하고 있었다.

서너시간을 앉았다 일어섰다 하면서 넋나간 사람처럼 강을 쳐다 보았다. “아, 나는 앞으로 어떻게 되는건가.“

사방이 어둑어둑해질 무렵 무거운 발길을 돌렸다. 집에서 아버지 어머니가 저녁식사도 안하시고 기다리고 계셨다. 힘없는 얼굴로 밥상앞에 앚았을 때 아버지가 말씀하셨다.

“너무 상심하지 마라. 어떻게든 네 장래를 위해 다 해줄 것이니 믿어라.”

뾰족한 수가 없는걸 알지만 아버지의 말씀을 들으니 조금은 진정이 되어 편안한 마음으로 잠자리에 들었다. 이때까지 나는 우물안 개구리 였다. 집 떠나면 죽는줄 알았다. 한번도 세상밖으로 가본적이 없었으니까. 감히 집이외의 다른 지역에 가는 것은 생각조차 하지 않았으며, 집과 강만 마음속에 자리잡고 있었다.

세상을 알아야 했고, 짧은 기간 배운 한문을 무슨 수를 쓰더라도 더 알고 익히기 위해 서울신문을 구독하기 시작했다. 한문을 신문에 한글과 함께 많이 사용하여 공부에 도움이 컸다. 더불어 세상 바깥을 아는데 유익했다. 아침식사를 마치면 신문을 강으로 가지고 가서 읽고 또 읽었다. 기사, 광고, 사진 그 하나 빼놓지 않고 머리에 넣고 마음에 담았다.

때로는 강가에 자리를 펴고 누워 잠을 청하기도 하고, 물에 들어가 수영을 하면서 신문과 강과 내가 하나가 되었고, 밝아진 마음속에 새로운 희망이 생겼다. 강과 함께 하면서 삶이 풍요로워지고 생각이 넓어짐을 이루어가면서 미지의 세계에 대한 관심과 이해를 한층 높여갔다.

눈에 띄게 부드러워진 강을 보면서 아직은 언제일지, 무엇이 될지 모르지만 분명한 것은 절대적으로 잘 된다, 될 것이라고 큰 소리로 외쳤다. 집중된 생각과 노력은 결코 헛되지 않았다.

청주에 살고 있는 외사촌 형님이 취직자리를 알아봐 주겠다고 했다. 참으로 오랫만의 눈에 번쩍 띄는 소식을 듣고 하늘을 나는 기분이었다.

나이 열일곱살, 온 세상이 붉게 물들어가는 가을날에 나의 청주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나의 영원한 친구 남한강은 그후 탄금호가 되어 더욱 넓은 수면으로 변했으나 `내마음의 강 은 언제까지나 그대로이다. 지금 호가 남강(南江)이다. 서예가 운당 이쾌동선생이 나의 친구 남한강이야기를 듣고 지어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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