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철을 맞아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AI) 발생이 전국의 가금농장에서 끊이지 않고 있다. 올 겨울 들어 전국적으로 25건 이상이 발생했으며, 충북에서도 4건이 보고됐다. 그간 우리나라에서 고병원성 AI 는 단순히 가금류의 질병으로만 인식되어 왔으며, 매년 겨울이 되면 반복되는 하나의 가축질병 정도로 여져졌다.
하지만, 상황이 달라지고 있다. 최근 미국에서 발생한 첫 인체 사망 사례는 이 바이러스의 치명성을 다시 한번 일깨운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미국 외 국가에서 발생한 950건 이상의 고병원성 AI 인체감염 중 절반이 사망했다. 특히 심각한 점은 미국에서만 900여 개 젖소 농장에서 감염이 발생했고, 60명 이상의 인체 감염이 나타났다는 사실이다. 여기에 젖소에서 고양이로의 전파까지 확인되면서, 포유류 간 전파 가능성이 현실화됐다.
이러한 상황은 사람, 동물, 환경이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원헬스(One health)’ 관점의 필요성을 절실히 보여준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방역 대응은 이미 한계에 다다랐다. 2024년 한 해동안 54만건이 넘는 샘플을 검사해야 했고, AI 발생 시에는 수백 개의 농장을 방문해야 하지만 이를 담당할 수의직 공무원은 턱없이 부족하다. 일선에서 직접 시료를 채취해야 하는 이들은 농장 종사자보다 더 높은 감염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
과학계가 주목하는 것은 바이러스의 진화 속도다. 현재 우세종인 H5N1형은 2021년 이후 감염 빈도가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특히 이 바이러스가 포유류에 더욱 친화적으로 변이되고 있다는 점을 경계하고 있다. 아직 사람간 전파 사례는 없지만, 바이러스가 보여주는 빠른 적응력은 예의주시해야 할 대상이다.
더욱 심각한 것은 우리의 대응 체계가 이러한 위험에 충분히 준비되어 있지 않다는 점이다. 농장 예찰과 방역을 담당하는 수의직 공무원은 극심한 인력난을 겪고 있다. 여기에 인체 감염이라는 새로운 위험까지 더해지면서 젊은 수의사들의 공직 기피 현장은 더욱 심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국가 방역체계의 근간이 흔들릴 수 있다는 경고다.
이러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근본적인 체계 개선이 필요하다. 수의직 공무원의 처우를 획기적으로 개선하여 우수 인력을 확보해야 한다. 또한 과감한 예산 투입으로 효율적 감시체계를 구축하고 연구 인프라를 강화해야 한다. 자체 백신 개발 역량 확보도 시급하다. 코로나19 상황에서 경험했듯이, 전 세계적으로 유행 시에는 백신 수급이 어려울 수 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사람과 동물, 환경을 아우르는 원헬스 기반의 통합적 방역체계 구축이 필수적이다.
신종 감염병의 역사는 우리에게 끊임없이 경고를 보내고 있다. 치사율 50%를 넘는 고병원성 AI는 이제 새를 넘어 포유류까지 위협을 가하고 있다. 코로나19를 통해 우리는 준비 없는 위기가 얼마나 큰 대가를 치르게 하는지 뼈저리게 경험했다. 방역 최전선을 지키는 수의직 공무원들의 처우 개선과 연구 인프라 확충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다. 다음 팬데믹이 시작된 후의 후회는 너무 늦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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