삭풍_그림자
삭풍_그림자
  • 안승현 청주시문화산업진흥재단 문화산업본부장
  • 승인 2025.01.07 14:3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시간의 문앞에서

“가지에 앉은 참새가 감나무 열매인 줄” 해는 뉘엿뉘엿 넘는데 집을 찾아 들어가야 할 참새들이 감나무 주변을 배회하고 있다. 잠시 앉았다 날아갈 것 같았는데 오래도록 미동조차 없다. 종일 여기저기 쏘다니다 집에 들어갈 때가 되니 아쉬운 것인지? 아니면 너무나 신나게 놀아 녹초가 되어 들어갈 힘이 빠진 것인지? 한자리에 잠시도 못 앉아 있던 녀석들이 넋 놓고 가지를 차지하고 있다. 가지에 껌딱지를 붙여놓을 줄. 옴짝달싹하지 않는다. 그 모습을 큰딸이 넋 놓고 바라보고 있다. 한 주 에너지를 소진한 듯, 소파를 다 차지하고는 하나가 되었다.

“아 저렇게 가지를 물어가는구나!” “아빠가 얘기했던 그대로네” 까치가 감나무 가지에 앉더니 콩콩 뛰어 다른 가지로 옮겨 앉았다. 고개를 살짝 돌리더니 가지를 물었다. 그리고는 부러트려 다시 물었다. 최대한 아랫단을 물어 부러트리고 다른 가지에 살짝 걸쳐놓는가 싶더니 중간을 물고 학교 커다란 느티나무로 옮겨갔다. 한겨울인데도 까치가 열심히 집을 보수하고 있다. 눈의 무게를 감당할 수 있는 장치를 하는 것인지? 아니면 한파를 막아줄 방풍 구조를 만드는 것인지? 그도 아니면 세찬 북풍에 견딜 내풍 보강재를 덧대주는 지는 모를 일이다. 연신 가지를 물어간다. 제법 어둑해졌는데 작업은 계속 진행 중이다.

“우리 집 감나무 가지를 꺾어다 집을 짓는 거네” 어차피 해를 받지 못하는 가지는 삭은 다리가 되어 자연스럽게 떨어져. 까치가 부러트릴 정도면 이제 죽어 떨어질 나무라 대꾸한다.

낮 동안 천천히 움직이던 그림자가 더는 움직이지를 않는다. 가지에 열매처럼 앉아 있던 참새도 연신 가지를 물어 나르던 까치는 온데간데없다. 짙은 어둠이 주변으로 깔리고 가로등이 밝히는 시간이 되었다. 밤이 되어서도 감나무 가지 그림자는 없어지지 않는다. 낮과 밤에 다른 것은 방향을 틀어가며 움직이거나 움직이지 않는 차이만 있을 뿐이다. 그리고 부드러운 윤곽선이 조금은 달라졌다. 약간 흐려진 듯하지만 좀 더 넓어지고 윤곽선이 좀 더 뚜렷해졌다. 그리고 좀 더 흑백에 가까운 단색 톤이 되었다. 주변도 흐릿하고 색상이 날아가게 처리된 배경을 갖췄다.

밤이 되어 기온이 많이 내려간 듯하다. 잎을 떨군 가지는 바람을 타는지 부르르 떨고 있다. 하지만 그림자가 흔들릴 정도는 아니다. 감나무가 가로등 빛을 받고 있다. 변화무쌍한 삶을 산 듯하다. 온전하게 뻗은 가지가 없다. 중간에 부러지고 격하게 옆으로 뻗는가 싶더니, 아래로 휘어지기도 하고, 중간지점에서 새로운 가지가 뻗었다. 색도 묘한 차이를 갖는다. 껍질도 제각각이다. 각질이 생겼나 싶은 가지에서 커다란 생선 비늘이 붙어있는가 싶기도 하고, 심지어 껍질이 다 떨어져 속살이 보일까 걱정스러운 정도다. 하지만 그림자의 영역은 새로운 공간이다. 새로운 가지가 늘어 그림자가 엄청 많아지는 것도 아니다. 색을 달리하지 않는다. 색조의 변화가 조금 있을지라도 늘 같은 무채색이다. 모든 색을 다 품었기에 가질 수 있는 색이다. 어떠한 변화의 상황에도 늘 기본을 지키고 모든 것을 품기에 어둡지 않다. 한낮의 해와 호흡을 같이 하고, 온전히 비춰주는 가로등과 하나가 된다. 가끔 불어주는 바람은 벗이다. 가만히 있어 보려 하지만 우울해질까 걱정해 주는 심술궂은 벗이다.

아버지가 심어놓은 감나무, 까치가 가지 칠 일을 덜어주고 물어간 가지는 보금자리의 소중한 자재가 된다. 감을 달고, 온갖 새들의 먹이 창고와 휴식처가 되어준 감나무, 겨울이 되어 모조리 벋고, 가끔 지친 새들이 찾는 안식처 되었다. 모든 시간을 땅바닥에 내리고 앉은 그림자는 늘 쳐다보고 있다. 한 번도 떠난 적이 없다. 없으면 없는 대로 있으면 있는 대로 그렇게 바라만 보고 나무에 땅에 붙어있다.

꽤 추운가 보다? 감나무 그림자가 창문에 걸쳤다. 창문을 열어 기다란 그림자를 들인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