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빛이 물드는 오전 5시 40분, 스마트폰 알람소리가 잠을 깨운다. 눈은 떠졌지만 곧장 일어나기가 귀찮아 뒤척이다 6시에야 화장실로 향한다. 칫솔을 꺼내 치약을 조금 짜 바르고 구석구석 양치질을 한 다음 수돗물로 입안을 헹궈낸다. 그리고 다시 거실로 와서 팔굽혀펴기 자세를 취한다. ‘이거 해야 돼, 말아야 돼’ 아직도 망설인다.
양 어깨가 넓을수록 근육이 더 잘 만들어 진다기에 한 뼘 더 넓게 바닥을 집는다. 몸을 내리고 올릴 때 느낌을 온전히 느껴본다. 쉰 개나 할 수 있을까. 하지만 기왕에 한 거 쉰 개에다 다섯을 보태 마무리한다.
곧이어 소파 위에 놓여있는 악력기를 집는다. 몇 개만 하자는 심정으로 악력기를 쥐었다 폈다를 반복한다. 오른손과 왼손 각각 150개. 그만하면 목표 달성이다.
운동 끝, 이제 그만하고 출근 준비하려는데 윗몸일으키기를 빼먹으면 안 되지 싶다. 오늘 미루면 내일도 미룰 것 같은 불안감 때문이다. 발은 어느새 윗몸일으키기 기구가 있는 거실 펜트리 안으로 향한다. 발목을 기구에 걸고 경사진 등판대에 엉덩이를 대어 윗몸일으키기를 한다. 아흔 개. 복근 잡혀지는게 느껴지고 척추가 곧추 선 느낌이 좋다.
이제 화장실 욕조에 들어가 샤워기에 몸을 씻어내고 목욕타올에 비누거품을 만들어 몸을 닦아낸다. 확실히 운동을 하고 난 다음 샤워는 상쾌함이 배가 된다.
마침내 오늘 아침 운동을 해냈다. 운동은 매일 아침 고민과 갈등의 연속이다. 하기 싫어하는 마음과 해야 한다는 두 마음이 싸우는 것이다. 하고자 하는 마음이 질 때도 있지만 ‘그래, 목표치를 채우는 게 뭐가 중요해, 운동복을 입고 몇 개만 하자’며 버틴다.
가령 쉰 번을 해야 할 팔굽혀펴기를 열 개만 하자는 식이다. 하지만 막상 팔굽혀펴기를 하다보면 열 개에 그치지 않고 목표량 쉰 개를 다 채우는 경우가 많다.
사무실 일도 다르지 않다. 맡은 일 가운데는 개인 성향에 따라 나름 흥미를 느끼며 하기 좋아하는 일이 있는가 하면, 한마디로 ‘꼴보기’ 싫은 일도 있다. 문제는 그 ‘꼴보기’ 싫은 일을 해야할 때이다.
생각도 하기 싫고, 들춰보기도 싫은 일은 자꾸 미루는 경향이 있다. 보통 하루를 미루면 하루 분량의 고민에 그치지만 삼일, 일주일을 미루게 되면 걱정거리로 둔갑하는 게 그런 일의 특성이다.
그럴 때마다 스스로를 다독인다. ‘언감생심 100점 짜리는 바라지도 않아. 일단 출발만이라도 시켜놓자’고 자신을 꼬드긴다. 그러면 좀 마음이 누그러지면서 일이 착수되고 진행에 속도가 붙는다.
당초 일을 착수해서 40~50점정도의 성과만 내도 다행이다 싶은데, 웬걸 일에 가속도가 붙고 내 자신이 몰랐던 지식과 경험이 더해지면서 기대 이상의 성과를 거둘 때가 종종 있다. 내게 이런 능력까지 있었지 싶을 만큼 대견함과 성취감을 느끼면서 말이다.
흔히들 ‘시작이 반이다’고 한다. 시작만해도 50점을 따고 들어간다는 얘기이다. 무언가 부담스러운 일을 해야 한다면, 그 일을 쪼개고 나누어서 가장 쉬운 첫 동작 하나만 시작해 보면 어떨까. 그러면 ‘아무것도 하지 않는 나’에서 ‘운동하는 나, 일 하는 나’로 순식간에 변화한다.
운동이 너무 하기 싫을 때, ‘그냥 운동복만 갈아입고 고민하자’라고 하거나, 일이 너무 하기 싫을 때, ‘일단 공문서나 지시사항만이라도 잘 읽어보자’라고 생각하면서 일에 착수하면 변화를 경험할 수 있다. 반사적으로 ‘기왕 하는 거 목표치를 다 채우자’라는 마음이 덤으로 따라온다.
내일 아침 운동할 때도 어김없이 두 마음이 또 싸울 것이다. 그러면 또 이래야겠지. ‘일단 운동복이라도 입고 생각해보자’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