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대통령실에 근무하는 공무원들이 안절부절이다.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탄핵 여파로 인사 시즌을 앞두고 뒤숭숭한 분위기다.
특히 정부 각 부처에서 파견된 공무원들은 더 착찹하다. 과거 대통령실의 전신이던 청와대로의 파견 근무는 정부 부처 ‘늘공(늘상 공무원, 전업 공무원을 의미)’들의 고위직 등용문이었다.
청와대 근무 기간에 쌓은 인맥은 곧바로 복귀하는 부처에서 막강한 영향력으로 발휘돼 ‘청와대 근무=고위직 보장’이란 등식이 성립될 정도였다.
하지만 이런 분위기가 윤석열 정부에서 갑작스런 탄핵 여파로 싸늘하게 식어버린 듯하다. 연말 인사를 한 달 채 앞두고 터진 ‘12.3 비상계엄사태’로 대통령이 탄핵을 당하면서 대통령실 근무 공무원들의 운신이 크게 좁아졌기 때문이다.
지금 대통령실의 업무는 개점 휴업 상태다. 직무가 정지된 윤 대통령을 위해 할 일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고작해야(?) 검경의 압수 수색팀과 대치하거나, 탄핵 관련 송달 우편물을 되돌려 보내는 것 말고는. 어쨌든 대통령실에 파견 근무를 나와 화려하게 본 소속청으로 금의환향을 꿈꿨던 ‘늘공’들. 갑자기 처량하게 됐다.
반면 다가올 인사철을 맞아 신바람이 난 곳도 있다. 바로 국방부, 그중에서도 육군이다.
육군은 이번 탄핵 여파로 최대의 승진 잔치를 벌일 것으로 예상된다. 탄핵 가담 장성들과 고위 영관들이 무더기로 옷을 벗게 될 전망이기 때문이다.
국방부는 이번에 탄핵 사태로 떨어질 별의 갯수가 최대 20여개 이상으로 추정하고 있다. 계엄사령관에서부터 시작해 별 세개인 육군특수전사령관, 수도방위사령관, 방첩사령관, 정보사령관 등 최고 수뇌부의 별만 합쳐도 16개다.
경찰청도 마찬가지다. 조지호 경찰청장과 김봉현 서울경찰청장 등 최고 수뇌부가 구속되면서 또다른 고위직 인사들의 신병도 위태한 상태다.
달갑지 않지만 육군은 이번 탄핵 사태로 뜻밖의 승진 잔치를 벌이게 됐다. 31년전 김영삼 정권의 육사 출신 하나회 숙청 때 이후 최대 규모다.
이번 탄핵에 가담해 구속되거나 피의자 신분으로 입건되어 조사를 받고 있는 육군 장성, 영관급 인사들은 모두 20여명. 대부분 내란 음모 종사 등 주요 가담자 신분이어서 처벌과 강제 전역, 또는 불명예 퇴진 등이 불가피한 상태.
불법 계엄에 가담한 군인들이 대부분 자의가 아닌 타의에 의해 단지 명령에 따랐다가 한 평생 지켜온 명예를 송두리째 잃게 됐다는 점에서 안타깝기 그지없다.
1987년 전두환 정권은 전국의 대학생들에다 ‘넥타이 부대’가 가세한 6월 항쟁이 거세지자 비상계엄 선포를 준비했다. 수경사, 특전사, 보안사 등 계엄 성공을 위한 주력 부대에 그해 6월 19일 비상계엄을 준비하라는 명령서가 하달됐다. 시위를 무력 진압하라는 지시였다.
그러나 당시 민병돈 특전사령관과 고명승 보안사령관 등이 강력하게 반발하며 전두환의 계엄 선포 계획은 무위로 돌아갔다.
당시 이를 반대한 군 장성들은 훗날 언론과의 인터뷰에 “서울에서 계엄 선포와 함께 유혈 진압이 이뤄지면 나라가 망할 것 같았다”고 말했다.
이후 국내 정치는 열흘 후 노태우의 극적인 6.29 선언으로 지금의 대통령 직선제와 5년 단임제를 이끌어 냈다. 진정한 서울의 봄이 오는 순간이었다.
불법 명령에 국민과 헌법 정신을 우선시하며 소신을 굽히지 않고 계엄을 반대한 장군들. 지금 우리나라엔 별은 많은데 ‘장군’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