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 한글연구서, 日 교토대학 ‘벌레집’으로 방치
최초 한글연구서, 日 교토대학 ‘벌레집’으로 방치
  • 오영근 기자
  • 승인 2024.10.07 19: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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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8돌 한글날 기획/최석정 선생 '경세훈민정음도설'을 다시 말하다

세계 최초 마방진 창안·대기근서 백성 구한 영웅
1750년 신경준 훈민정음운해比 35~49년 앞서
초·중·종성 - 고저 - 개폐음 분류 1만2288자 조합
일제 수탈 日 교토대 서고 수장 … 역사에서 잊혀져
1961년 청주대 김지용 교수 발견 국내 존재 알려

 

지난 2011년 명문당에서 발행한 경세훈민정음도설.

조선 숙종 때 영의정을 8번 역임한 명재상 명곡(明谷) 최석정 선생의 저술로 한글에 대한 최초의 학문적 연구서다. 일본 교토대학 도서관에 수장된 것을 지난 1961년 고(故) 김지용 전 청주대학교 국문과 교수(1922~2013년)에 의해 그 존재가 국내에 알려졌다.

최석정 선생 수택(手澤) 유일본으로만 남겨져 있는 이 책은 역사적·학술적 가치에도 불구, 현재 교토대학 서고 깊은 곳에서 `벌레집'으로 방치돼 으스러지고 있다.

578돌 한글날을 맞아 충북 출신인 최석정 선생의 수택고본 저술인 `경세훈민정음도설'에 대한 재조명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관련기사 2면

경세훈민정음도설이 세종 28년(1446년) 훈민정음 반포와 함께 발행됐던 `훈민정음 해례' 이후 나온 `최초의 한글 연구서'이기 때문이다.

그동안 학계의 정설은 숙종 때인 1750년 나온 신경준의 `훈민정음운해'를 최초의 한글 음운학연구로 보고 있다. 훈민정음 반포 305년이 지나서 나온 저술이다.

그러나 최석정 선생의 `경세훈민정음도설'은 이보다 최소 35년에서 49년이 앞선다.

고 김지용 교수는 이 책의 저술 시기를 선생이 관직에서 물러나 청주 북이에 머물던 1701~1715년(사망) 사이로 추정했다.

이는 경세훈민정음도설이 훈민정음에 대한 최초의 연구서 임을 의미한다.

최석정 선생은 이 저술에서 훈민정음 28자를 초성과 중성·종성, 소리의 높낮이(高低), 발음모양(開閉)으로 분류, 1만2288자로 조합됨을 밝혀냈다.

순경음(脣輕音)인 `ㅱ, ㅸ, ㅹ, ㆄ'을 합치면 그 수효는 더 늘어(α)난다고 기술하고 있다.

`디지털 모바일' 시대에 가장 적합하고 실용적인, 그래서 한글이 세계 여러 문자 중 가장 과학적이고 우수한 문자임을 이미 300여년 전 입증해냈던 셈이다.

김 교수는 이 책 영인본 서문에서 “선대 학자(최석정 선생)들도 한글을 지금처럼 깊고 실용성 있게 연구했던 사실이 놀랍다”고 평하고 있다.

하지만 `경세훈민정음도설'은 선생의 위업이 역사에 묻혀있듯 그 존재조차 후대에 전해지지 않았다.

일제 강점기인 1910년 총독부에 근무하던 일본인 가아이고오민(河合弘民)에 의해 강화도 전등사에서 탈취, 일본 교토대학 도서관 깊은 서고에 수장됐던 탓이다.

한글학자 고(故)이숭녕 교수조차 “그 본서(경세훈민정음도설)를 얻어 볼 수 없음이 유감입니다”라고 말했으니 더 말해 무엇하랴.

이렇게 일본 교토대학 서고에 방치돼 오던 경세훈민정음도설은 1961년 김 교수가 마이크로필름으로 촬영해 공개하면서 빛을 보게 됐다.

1962년엔 동아일보가 `경세훈민정음도설 찾았다'는 기사로 이를 특필했고 1973년엔 고 김석득 연세대 교수(1931~2023년)의 `경세훈민정음 도설-국어학상의 의미'란 논문이 발표됐다.

이후 2011년 명문당에서 책으로도 출간됐고 2018년 이상규 경북대 명예교수가 종합 해설서로 `명곡 최석정 경세훈민정음'을 출간한 바 있다.

하지만 선생 저술은 여전히 세간의 주목을 받지 못하고 있다.

한글학회 김슬옹 이사(62·한글학자)는 “명곡 선생의 저술은 훈민정음을 체계적으로 분석한 최초의 연구서”라며 “역사적·학술적 가치에 비해 후대의 연구나 평가가 미흡한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이 책을 영인본으로 발간한 고 김 교수는 서문에서 “설사 강화도 전등사에 있었던 사실을 몰랐다 치더라도 일본 교토대학 도서관에 소장됐던 반세기 동안이나 어찌 못 보았는지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일제 35년 동안 교토대학에 유학한 한국인이 적지 않았으니 하는 말이다”라며 후대의 무관심을 자책했다.

/오영근 대표이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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