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아침의 햇빛부터 따갑게 느껴지는 것을 보니, 그 어느 때보다 길고 힘들었던 장마가 끝나가나 보다. 아이들 방학도 했겠다, 본격적인 휴가를 고민하게 된다. 어디로 가야 할지 핸드폰으로 여기저기 검색하고, 고민 끝에 목적지가 정해지면 당장이라도 내비게이션 앱을 켜고 쭉쭉 뻗은 도로를 달린다. 막히는 길도 척척 알려주니 그렇게 편할 수가 없다. 게다가 가는 길에 입을 즐겁게 해줄 휴게소에 들리는 재미도 빼놓을 수 없다. 검색부터 길 안내, 금액 결제까지, 이 모든 것이 핸드폰 하나로 가능한 세상에 우리가 살고 있다.
그렇다면 먼 옛날엔 어땠을까. 멀리 거슬러 올라갈 것도 없이 조선시대만 해도 어디든 걸어 다니는 것이 일상이었다. 최대한 빠르고 편한 길을 따라 걷다가 산이 나오면 주변보다 낮은 봉우리를 이용한 고갯길을 넘어야 했다.
충청북도는 우리나라의 중심에 있다 보니, 남쪽에서 서울에 가기 위해선 반드시 거쳐 가야 하는 곳이었다. 그래서 우리 지역 곳곳에는 고갯길이 여럿 있다. 이중 계립령은 충주시 수안보면에서 경북 문경시를 잇는 고갯길로, 하늘과 맞닿아 있다고 해서 `하늘재'라고도 불린다. 『삼국사기』에 `156년 계립령이 열렸다'는 기록이 있어,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고갯길로 알려진 곳이다.
계립령이 열리고 2년이 지나 `158년 3월 비로소 죽령 길이 열리게' 되었는데, 이 길이 뚫리며 단양에서 경북 영주까지 하루 만에 이동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특히 이 고개는 군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길이었음이 『삼국사기』에 몇 차례 기록으로 남아있다. 바로 551년과 590년의 기록이다. 551년, 신라 진흥왕 때 신라가 백제와 연합해서 죽령 북쪽의 땅을 고구려에게서 빼앗았다. 이곳은 오랫동안 고구려와 신라의 영토 분쟁지역이었는데, 마침내 신라가 죽령 북쪽으로 진출하게 되었다는 이야기이다. 이는 우리가 한 번쯤 들어본 단양 신라 적성비(국보)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는데, 진흥왕은 드디어 이곳이 신라 땅이 된 것을 기념하기 위해 적성비를 세웠다.
590년의 기록은, 40년 전 신라에 빼앗겼던 죽령 북쪽의 땅을 되찾지 못하면 돌아오지 않겠다고 다짐한 고구려 온달장군의 기록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고구려는 영영 이곳을 차지하지 못하였고, 신라는 이곳을 통해 한강 유역으로 진출하여 삼국통일의 기틀을 마련해 갔다.
이렇게 중요한 곳이었던 죽령 고갯길에는 재미난 설화도 전해진다. 그 이야기에 따르면, 먼 옛날 죽령 고갯길에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도둑들이 나타나 지나가는 백성들을 괴롭혔다. 그러나 산이 워낙 험해 관군도 도둑들을 잡기 어려웠다. 이때 한 할머니가 나타나, 자기가 도둑들 소굴에 들어가 있다가 도둑들이 다 잠들면 `다자구야~'라고 하고, 도둑들이 아직 잠들지 않았으면 `덜자구야~'라고 외치기로 하였다. 그러던 중 두목의 생일을 맞아 술에 거나하게 마신 도둑들이 술에 취해 모두 잠든 날이 찾아왔다. 이에 할머니는 `다자구야~'라고 크게 소리쳤고, 이 소리를 들은 관군들이 몰려와 도둑들을 모두 잡아들일 수 있었다는 이야기이다. 초등학교 국어 교과서에도 실린 적 있던 이 이야기의 주인공, 다자구 할머니는 이곳을 지키는 산신으로 모셔져 매년 봄·가을이면 여전히 산신제를 지내고 있다.
이러한 옛길은 교통수단이 발달하며 점점 쇠퇴하여 잘 이용하지 않게 되었지만, 오히려 요즘에는 숲길의 정취와 고요한 휴식을 원하는 사람들의 발길이 닿고 있다. 국가가 명승으로 지정하여 보호하고 있는 이 길을 걸으며 새소리도 듣고, 풀냄새도 맡다 보면 복잡했던 머릿속이 평온해진다. 이번 휴가에는 느리고 천천히 충북의 옛길을 한번 걸어보는 것을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