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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는 지금 마슬레니차 축제 기간이다. 보통 2월 말에서 3월 초에 해당하는 마슬레니차 축제는 러시아정교회의 사순절 직전 일주일 동안 진행되는 카니발과 유사한 형태의 슬라브 민족의 전통 축제를 가리킨다.
올해 러시아 마슬레니차 축제는 지난 24일 시작해 3월2일까지 진행된다. 마슬레니차는 종교적인 의의 이외에도 기나긴 겨울과 작별을 고하는 봄맞이 축제로도 잘 알려져 있다.
도시의 광장과 공원은 전통 의상을 차려입은 이들로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며, 태양을 상징하는 블린이라는 둥그런 팬케이크를 구워 음식을 나누는 이들로 가득하다. 기나긴 겨울을 떠나보내는 이들의 행복한 웃음과 기쁨의 환호가 일주일 동안 슬라브인의 시골과 도시 곳곳을 가득 메운다.
1901년 발표된 안톤 체호프의 4막의 장막극 ‘세자매’ 2막 첫 시작부에는 흥겨운 마슬레니차 축제를 보내는 하인들이 이 기간 자칫 집안일을 소홀히 할까 걱정하며 밤중에 순찰을 도는 여귀족 나타샤의 모습이 묘사되어 있다.
이 기간에는 나이, 성별, 계급 모든 것을 막론하고 이 축제를 자유롭게 즐길, 현재의 모든 족쇄와 금기로부터 해방될 수 있는 권리가 모두에게 주어진다.
니키타 미할코프 감독의 1998년 영화 ‘러브 오브 시베리아’에는 민중들의 마슬레니차 축제에 끼어든 술에 취한 사관학교 교장의 왁자지껄한 소란이 우스꽝스럽고 유쾌하게 그려져 있다.
이 영화에는 양 편으로 갈라져 집단으로 상대와 주먹다짐을 벌이다 얼굴에 피를 흘리면서도 상대에 대한 분노와 원망없이 일상으로 돌아오는 러시아 남성의 모습이 등장한다. 이는 일주일동안 진행되는 마슬레니차 축제의 네 번째 날 ‘라즈굴’(흥청망청의 날)의 한 장면을 묘사한 것으로, 여기에 등장하는 주먹다짐은 러시아 남성들의 왕성한 혈기로 오랜 잠에 빠져있던 어머니 대지를 깨워 봄을 재촉한다는 의미를 갖는다.
필자가 경험한 러시아의 마슬레니차는 우리의 정월대보름과 흡사했다. 정월대보름의 절정은 누가 뭐래도 달집태우기다. 달집태우기는 겨울을 끝내고 봄을 맞이한다는 의미와 함께 악귀를 쫓고 복을 기원하는 의미를 갖는다. 풍년과 가족의 건강에 대한 기원뿐만 아니라 마을 공동체의 결속력을 강화하는 기능도 갖는다.
우리의 달집태우기는 단순한 불놀이를 넘어 농업 중심의 삶에서 나오는 기복신앙과 마을 공동체의 단합을 의미하는 중요한 사회·문화적 행사로 자리 잡았다. 이러한 정월대보름, 우리의 달집태우기와 정확히 일치하는 것이 러시아 마슬레니차 축제의 허수아비 태우기다.
마슬레니차는 월요일에 시작해 일요일에 끝이 난다. 마슬레니차가 시작되는 월요일, 사람들은 짚과 낡은 옷, 그리고 주변에서 손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를 엮어 허수아비를 만들어 광장과 축제의 장소 한가운데 세워놓는다. 그리고 축제가 끝나는 마지막 일요일에 그것을 둥그렇게 에워싸고는 불쏘시개를 던져 불을 붙인다.
러시아 단어 ‘일요일’은 ‘부활’이라는 의미를 동시에 갖는다. 마슬레니차 기간의 마지막 일요일은 ‘대속죄일’, ‘용서의 날’ 등으로 불린다. 가까운 이들에게 지난 1년 동안의 잘못에 대해 용서를 구하고 망자를 기리며, 목욕탕을 찾아 몸을 깨끗이 하고 다가올 사순절을 진지하게 준비한다.
2022년 2월24일 시작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만 3년을 넘어섰다. 수많은 이들이 꽃을 피워보지도 못하고 어둡고 축축한 땅속에 누워 썩어가고 있다.
마슬레니차의 마지막 일곱째 날, 용서의 날, 대속죄의 날이 다가오고 있다. 신이시여, 서로 용서가 불가능한 이들을 당신께서 용서하여 주소서. ‘지금, 여기서’ 이 모든 것을 멈추게 하여 주소서.
유난히 길고 추웠던 우리의 겨울, 끝나지 않을 것 같았던 그 무자비한 겨울 앞에 목련의 겨울눈이 꽃망울을 준비하고 있었다. 봄이 온다, 봄은 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