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개가 낮게 깔린 초행길을 조심스럽게 달린다. 교동도 대교 앞에 이르자 군인들이 길을 막아선다. 이곳부터는 민간인 출입 통제선이라 했다. 초소 앞에서 신분증을 제시하고 허락이 떨어질 때까지 기다린다. 살벌한 군사 지역임을 체감한다. 신분이 확인되자 통과 허락이 떨어졌다. 교동대교 다리를 건너며 바라본 바다가 내게 많은 이야기를 해주는 것 같다. 창밖의 빗줄기는 점점 굵어지고, 연산군 유배지를 찾아가는 길은 무거운 마음만치나 절차가 복잡하다.
언덕길을 한참 올라 연산군이 위리안치되었던 초가집 앞에 섰다. 안으로 들어가서 들여다본 방은 한 사람 겨우 누울 만한 크기다. 연산군은 임금의 자리에 있을 때 백성들을 삶의 터전에서 내쫓고 자신의 사냥터로 사용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조선팔도가 다 내 땅인 양 종횡무진 말을 달리다 이 좁은 곳에 갇혀 옴짝달싹 못 하게 생겼으니 그 심정이 오죽했을까. 게다가 연산군 형상의 밀랍 인형 앞에 놓인 밥상은 밥 한 주발, 국 한 대접, 그리고 간장 종지가 전부다. 어느 천민의 밥상이라고 해도 어울릴 정도다. 채홍사를 두어 자신의 유흥을 위해 뽑은 여자의 수가 만 명에 이르렀고, 산해진미 그득한 상차림에 흥청망청 놀다가 저렇게 되었으니 그 마음 다스리기가 쉽지 않았을 것 같다.
조그마한 초가를 둘러싼 탱자나무가 우악하고 공포스럽다. 그전에 우리 옛집에도 탱자나무 울타리가 있었다. 가을이면 노랗게 익은 탱자 향기가 바람을 타고 방안까지 스며들었다. 어머님은 파란 탱자를 썰어 말려 두었다가 식구 중 누가 속이 더부룩하면 차를 끓여 주셨다. 다슬기를 좋아하시는 아버님을 위해 나는 다슬기 된장국을 자주 끓였다. 내가 다슬기를 삶으면 아버님은 어느새 가장 실한 탱자 가시를 준비하셨다. 탱자나무 가시는 일년내내 아버님의 간식인 다슬기를 빼는 도구였다. 한겨울 우거진 탱자나무 울타리에 수십 마리 참새 떼가 날아드는 보금자리였다. 날카로운 가시 속으로 날아드는데, 어떻게 가시에 찔리지도 않고 포르릉 잘 날아드는지, 신기해서 한참씩 바라보고는 했다. 탱자나무에 깃든 내 정서는 이렇게 따스한데, 이곳 탱자나무는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위압감이 든다.
폭정을 일삼은 것으로 많이 알려진 연산군은 재위 초기에는 업적도 있었다고 한다. 빈민 구제를 위해 사창과 상평창을 설치하고, 국방 강화에도 힘썼으며, 국조보감, 여지승람, 등의 서적을 간행하며 학문을 장려했다고 한다. 안타깝게도 재위 후기의 폭력성이 너무나도 심해 그 업적마저도 모두 묻히고 만 것이다.
연산군은 일곱 살에 생모를 잃었다. 그 어린 나이에 어머니의 사랑을 얼마나 갈구했을까. 어머니를 향한 그리움이 쌓여 울분이 되었던 것은 아니었나 하는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모든 생명에는 돌봄의 손길이 필요하다. 땅에 심은 여린 묘가 잘 자라 제 역할을 할 수 있기까지는 누군가의 사랑과 관심이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일곱 살 어린아이에게 더 절실하게 필요한 것은 어머니의 사랑이 아니었을까.
어머니의 부재가 무난했던 왕을 폭군으로 만들지 않았나 하는 무거운 마음으로 유배지를 뒤로하고 내려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