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나무 세 그루 중 둥시를 단 나무가 먼저 가지를 드러냈다. 잎이 가장 단풍답게 물드는 나무다. 물기를 충분히 가진 상태에서 물드는 탓에 감과 구분이 잘 안 될 정도다. 잎이 다 떨어진 후에 감이 드러날 때가 많다. 그런데 올해는 감을 달지 않았다. 해거리한다 해도 이럴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래도 혹시 몇 개는 달렸겠지 싶었는데 눈을 씻고 찾아봐도 감이 보이지 않았다. 그랬는데 유독 중간에 단풍이 잘 든 잎이 하나 매달려 있나 싶었는데 제법 커다란 감이었다. 까치밥으로 남겨 놓을까 싶었지만, 고민 끝에 따 버렸다. 곶감 하나 얻었다. 미안하지만 까치밥은 따기 전부터 이미 내주고 있었다.
감이 빠진 빈 감꼭지만 있다. 겨울을 나고 새싹이 날 때쯤의 말라비틀어진 감꼭지다. 감이 일찍 빠져 비바람을 맞고 퇴색되었다. 감이 달렸지만 바로 물렀다. 그리고는 새들의 만찬이 되었다. 동네 새들은 다 모였다. 몇 번 쪼아 먹고는 서로 먹겠다고 난리 치는 통에 바닥에 감이 묵사발이 되었다. 묵사발이 된 감은 말벌과 나비 몫이 되었다.
단감이 유독 심각했다. 감이 달리고 노란색으로 바뀔 즈음 따는데, 올해는 달린 상태에서 홍시가 되어버렸다. 혹시나 해 숟가락으로 속살을 발라 입에 넣었다. 입에 넣자마자 뱉어버렸다. 야릇한 쉰내가 났다. 껍질은 거칠고 속은 물렀다. 감잎은 한여름의 초록색을 유지한 상태에서 빨갛게 익은 감이 달려있다.
그나마 대봉은 지난해만큼은 아니지만 먹을 만큼은 건졌다. 나눠주는 것은 가끔 집 앞을 놀이터 삼아 놀러 오는 남매에게 두어 번 건넬 정도다. 많은 감은 진즉 새들의 먹이가 되었다. 조금만 익었다 싶으면 바로 부리로 쪼아 버렸다. 먹을 게 많지 않다는 것을 안 것인지 미리 찜을 해두기라도 한 듯하다.
감나무를 심고 매년 걷이를 하며 풍족하지는 않지만 나눠 먹을 만큼의 감을 내주던 나무였는데, 올해는 이해가 안 갈 정도의 내줌이다. 감나무가 커지면서 감 따는 수고로움을 덜어주려는 나무의 깊은 뜻도 아닐 듯. 매년 약을 치지 않았으니 병해충 방지도 아닐 테고, 거름을 충분히 주지 않은 건가 싶기도 하고, 과속의 트럭이 나뭇가지를 치면서 뿌리가 흔들렸나 싶은 생각도 는다.
꽃은 전에도 그랬듯 흐드러질 정도로 피었었다. 꽃이 많이 떨어져서 비질을 연신 한 기억이 또렷하다. 그러고 보니 감도 제법 달렸던 듯하다. 문제는 달린 상태에서 물러졌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기후변화를 탓하기에는 뭔가 미심쩍은 부분이 많다.
먼저 나무가 쇠약해진 듯하다. 꽃을 많이 피웠다고 나무가 건강한지는 생각할 일이다. 오히려 위기를 맞았을 때 꽃을 많이 피운다 한다. 씨를 퍼트리기 위한 것이다. 꽃을 피운다는 것, 관심받기 위한 것이다. 자랑이 아니고 종족 번식을 위한 관심이다. 좀 더 많은 개체 수를 만들어 세력을 넓히는 일이다.
처음 나무를 심고 수년간 꽃을 따준다. 나무가 어느 정도 성체가 될 때까지는 조절을 해주는 것이다. 그래야 건강한 열매를 맺을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건강한 나무를 만들기에 힘을 들이는 것이다. 건강한 나무는 어떤 나무일까? 굵은 가지를 가진 나무? 꽃을 많이 피우는 나무? 내가 아는 건강한 나무는 잎의 색이 선명하고 두터우며 물이 잔뜩 오른 나무다.
그 나무는 병해충의 방어에 있어 강력히 대응한다. 이에 멀리까지 물을 찾고 양분을 찾고자 함에 한없이 뻗어 나간 건강한 뿌리가 있다. 물 빠짐이 좋고 비옥한 땅을 만들어 간다. 그 안에는 많은 것들이 같이한다. 때론 경쟁도 하고 협조적 관계의 공생도 한다. 결국 건강한 흙이 건강한 나무, 건강한 열매를 만든다.
꽃을 피운다는 것은 짧은 기간에 이루어질 수 있다. 그러나 지속가능한, 건강한 꽃을 피우는 것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어느 한 대에서 노력했다고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간 무던히 뚝심 있게 일궈낸 흙을 기반으로 만들어지는 것이다.
시간의 문앞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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