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익은 글씨체다.
`바람이 숲을 지나가면, 낮은 데 이파리들이 먼저 수런대고 한발 늦게 키 큰 우듬지가 나무늘보처럼 느리게 흔들거린다. 세상이 이토록 반짝였던가.'
편지를 읽는 동안 나는 어느새 자작나무숲 한가운데 돗자리를 펴고 누워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다.
이태 전 원대리 자작나무숲에 갔다. 느린 우체통이 있어서 나에게 보내는 엽서 한 장을 써넣고 일 년 뒤에 받았었다.
일상으로 돌아와 바쁘게 지내며 까맣게 잊고 있던 그 날의 감동이 엽서를 받자 고스란히 떠올랐다.
하얀 나무줄기와 반짝이는 초록의 예쁜 잎들, 그 사이로 언뜻언뜻 보이는 하늘, 가파른 숲길로 들어서 한참을 올라가 마법처럼 자작나무숲이 펼쳐졌을 때의 그 놀라운 환희. 그 뒤로 나는 가끔 머리가 복잡할 때면 이 엽서편지를 꺼내 보곤 했다.
자작나무숲 가운데 정자가 있었다. 앉아 쉬면서, 빼곡하게 둘러쳐진 자작나무들을 향해 손가락 네모를 만들면 어디에 갖다 대도 그야말로 그림이었다.
거기서 우연히 해설사를 만났다. 시야에 들어오는 풍경과 눈 감고 듣는 바람 소리만으로도 좋았지만, 해설사의 이야기로 자작나무 매력에 한층 더 빠져들게 되었다.
자작나무 껍질은 기름기가 많아 습기에 강하고 불에 잘 탄단다. 그래서 옛날 결혼식 때 신방을 밝히는 촛불의 재료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흔히 결혼식 첫날밤을 `화촉을 밝히다라고 할 때, 그 한자가 `자작나무 화(樺)'자에 `촛불 촉(燭)'자인 걸 그때 알았다.
방수성이 좋아 배를 만들거나 또 종이 대용으로 사용하기도 했다. 천마총의 천마도 그림도 이 자작나무 껍질에 그린 것이라 했다.
해리포터의 마법 빗자루 파이어 볼트가 자작나무로 만들어졌다니, 돌아가서 아들에게 꼭 말해줘야지 생각했었다.
또 팔랑거리는 이파리가 하늘을 덮고 아기 엉덩이처럼 희고 보드라운 줄기들이 사방으로 둘러쳐진 그 속에서 자작나무와 메밀국수(평양냉면)를 사랑한 백석의 시를 들었다.
산골집은 대들보도 기둥도 문살도 자작나무다/ 밤이면 캥캥 여우가 우는 산도 자작나무다/ 그 맛있는 메밀국수를 삶는 장작도 자작나무다/ 그리고 감로(甘露)같이 단샘이 솟는 박우물도 자작나무다/ 산 너머는 평안도 땅도 뵈인다는 이 산골은 온통 자작나무다
집으로 돌아와 백석의 시들을 찾아봤다. 솔직 담백하고 꾸밈없이 소박한 그의 시들은 읽을수록 내 취향이었다.
어린아이가 쓴 듯, 옆에 있는 친구에게 말하듯 평범한 어투가 그렇게 친근할 수 없었다. 저절로 순수해지는 느낌이라고나 할까.
자작나무숲의 바람이 무색무취여도 풍부한 피톤치드를 품고 있듯 눈길을 확 잡아끄는 문구는 없어도 정신을 맑게 하는 어떤 힘이 느껴졌다.
`국수'라는 시를 읽고 나는 그 맛이 궁금했다.
`히수무레하고 부드럽고 수수하고 슴슴한'이라는 시인의 표현만으로는 짐작이 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딸을 만난다는 핑계로 서울에 올라가 유명한 평양냉면집엘 갔다. 첫 느낌은 자극적이지 않고 매우 건강한 맛이랄까. 아니, 정말 솔직하게는 맛이라는 게 아예 없는 음식 같아 실망스러웠다.
그런데 신기한 것이 지치고 피곤할 때면 지나치게 깔끔한 그 맛이 생각나곤 한다는 것이다. 매일 먹진 않더라도 문득문득 꾸준히 찾게 되는 맛 말이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어쩌면 나도 그런 사람이 되고 싶은 것 같다. 고담(枯淡)하고 소박한 그런 사람이 되어 히수무레하고 부드럽고 수수하고 슴슴한 그런 글을 쓸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갑자기 평양냉면이 먹고 싶다.
生의 한가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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