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기관 눈초리 피해 운영 행태 지능화·음성화
기기 껐다 켜면 프로그램 삭제 … 혐의 입증 난망
손님 골라 받기·CCTV 설치 … 잠입수사 힘들어
`불법 게임장 탓에 가정이 파탄 나게 생겼습니다.'
경찰에 걸려온 전화 한 통. 충북 도내 읍 단위 시골 마을에서 불법 사행성 게임장이 성행하고 있다는 신고였다.
발신자는 “(배우자가)매일 늦게 귀가하고 돈을 가져다주지 않는다”고 도움을 요청했다.
신고 접수 후 사전 조사를 벌인 경찰은 해당 지역 게임장이 `무허가'라는 사실을 확인, 대대적인 단속을 벌였다.
급습한 게임장 안엔 무허가 게임기기 28대가 들어서 있었다.
경찰은 기기를 압수한 뒤 업주를 게임산업진흥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입건했다. 더불어 불법 환전 여부 확인과 게임물 감정 작업을 병행하고 있다.
서민 주머니를 터는 불법 사행성 게임장이 사라지지 않고 있다. 관계 기관이 강력 단속을 펼치고 있지만 되레 음지로 숨어들어 독버섯처럼 번지는 모양새다.
18일 충북지방경찰청에 따르면 최근 5년(2015~2019년)간 도내 불법 게임장 단속 건수는 모두 1217건이다. 평균으로 따지면 한 해 250건에 이르는 수준이다.
같은 기간 검거 인원은 1779명이다. 36명이 구속됐고 1743명이 불구속 입건됐다.
불법 게임장 운영 행태는 날로 지능·음성화하고 있다.
대표적으로는 속칭 `그림장 바꾸기'가 있다. 정상 심의등급을 받은 게임물에 사행성 기능을 숨겨 놓는 수법이다.
이를테면 고배당을 미리 알리는 `예시'나 연속 당첨을 가능하게 하는 `연타' 기능을 심는 식이다. 게임기 내 서버용 운영체제(OS)가 설치돼 있는 만큼 확률 조작까지 이뤄진다.
문제는 불법 개·변조 프로그램은 단속이 쉽지 않다는 데 있다. 업주가 기기를 껐다 켜면 프로그램이 통째로 지워지거나 정상 심의 게임물로 뒤바뀌기 때문이다.
경찰 관계자는 “단속을 해도 게임기 전원이 꺼져 있는 상태면 현장에서 혐의 입증이 어렵다”면서 “게임물관리위원회에 감정을 의뢰해 불법 여부를 가려야 한다”고 설명했다.
손님 골라 받기도 단속을 피하는 수법 중 하나다. 불법 게임장은 주변에 폐쇄회로(CC)TV를 설치, 바깥 동태를 살핀다.
안면이 없거나 거동이 수상한 손님은 일절 받지 않는다. 이상한 낌새가 느껴지면 곧바로 불법 게임물이나 환전 흔적을 없애고 달아난다. 경찰이 잠입 수사를 하기 어려운 이유다.
이뿐만이 아니다. 돈이 되는 까닭에 바다이야기와 같은 불법 게임장을 대놓고 운영하는 사례도 있다. `전주(錢主)'가 `바지사장'을 내세워 영업하는 게 대다수여서 근절이 쉽지 않은 경우다.
과거 불법 게임장 운영 경험이 있는 한 업주는 “고정 손님이 꽤 있다는 가정하에 한 달이면 시설 투자비까지 뽑고도 남는다”며 “단속에 걸려도 돈을 대는 사람은 빠져나가기 때문에 금방 또 다른 게임장이 생겨나는 악순환이 되풀이된다”고 귀띔했다.
사행산업통합감독위원회가 발표한 `제4차 불법도박 실태조사'연구 결과(지난해 기준)를 보면 국내 불법 도박 시장 규모는 81조5000여억원이다. 이 중 불법 사행성 게임장은 14조9000여억원(18.4%)으로 스포츠 도박에 이어 두 번째 높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조준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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