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마가 오늘 죽었다.”
야마는 인도 신화 속에 등장하는 최초의 인간이다. 아브라함 계통의 종교에서 언급하는 최초의 인간인 아담과 하와와 같은 존재라고 보면 된다. 인간은 누구나 언젠가는 죽는다. 야마도 결국엔 죽었다. 야마는 죽어서 살아생전에 쌓은 공덕으로 신(神)이 된다. 인도 신화에서의 사후세계인 나라카(Naraka)를 관장하는 죽음의 신이 된다. 우리가 벗어나기 어려운 절망적인 상황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인 ‘나락’은 여기서 유래했다. 나락은 지옥이란 뜻이다. 야마는 우리가 이미 익히 알고 있는 존재기도 하다. 야마에 왕이라는 뜻의 라자를 붙인 야마라자는 한자로 음차하면 염마라사(閻魔羅闍)가 된다. 염마라사는 중국 불교가 힌두교를 차용하는 과정에서 염라왕(閻羅王)으로 불리게 된다. 맞다. 우리가 알고 있는 그 염라대왕(閻羅大王)이다.
야마는 쌍둥이였다. 야미라는 누이가 있었다. 브라만교와 힌두교 근원성전인 리그베다에는 야미가 야마에게 구애(求愛)를 하는 이야기가 나온다. 남매간의 선을 넘어선 구애다. 선을 넘어도 심하게 넘는다. 야미는 야마를 남자로 생각했고 성적으로 흠모했다. 야미는 야마를 끈질기게 유혹한다. 걱정 마시라. 야마의 거절이 더 끈질겼다. 이 오누이 별일 없었다. 그렇게 별일 없던 어느 날 야마가 먼저 죽게 되었다. 그러니 끝까지 별일 없었다. 야미는 야마의 죽음 이전에는 죽음을 본 바도 들은 바도 겪은 바도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야마의 죽음은 인간 최초의 죽음이었다. 그의 죽음 이후 야미는 야마를 잃은 슬픔으로 비탄에 빠져 살며 온종일 똑같은 말만을 되풀이했다.
“야마가 오늘 죽었다”
이를 지켜보는 신들의 눈에는 야미가 한없이 가여웠다. 신들은 이런 야미를 손 놓고만 지켜 볼 수는 없었다. 신들은 야미에게 죽음에 대해 얘기해줬다. 그러나 야미는 죽음이 무엇인지 이해하지 못했다. 신들이 무슨 말을 하든지 야미의 입에서는 같은 말만 되풀이 될 뿐이었다.
“야마가 오늘 죽었다”
야마는 이제 죽었기에 잊어야 한다고 얘기해줬다. 그러나 야미는 잊는다는 것이 무엇인지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신들은 어떻게 하면 야미가 야마의 죽음을 받아들이고 잊을 수 있을지를 고심했다. 고심 끝에 신들은 밤을 만들기로 했다. 그 당시의 세상은 밤이 없는 낮만이 존재했다. 밤은 그렇게 생겨났다. 끝이 없는 오늘만 있던 세상에 밤이 생겨나니 하루가 생겨났고 또 다음 날이란 것도 생겨났다. 야미도 낮과 밤의 뒤바뀜 속에서 하루라는 개념을 서서히 이해하기 시작했다.
“야마가 어제 죽었다”
“야마가 그제 죽었다”
“야마가 그저께 죽었다”
“야마가 그끄저께 죽었다”
“야마는 죽었다 오래전에...”
야미는 그렇게 야마를 서서히 잊어갔다. 이것이 인도 신화에서 나오는 낮과 밤의 기원이다. 밤과 하루는 신들이 인간이 가여워 인간을 위해 만든 선물이자 산물이다. 그래서 이런 말도 있지 않는가. 어제는 히스토리이고 내일은 미스터리이며 오늘은 신이 내린 선물이다.
잠 못 이루는 밤도 깨기 힘든 아침도 있었다. 잠들기 두려운 밤도 잠깨기 두려운 아침도 있었다. 그런 하루들이 흘러 오늘 나는 여기에 있다. 달력은 이제 찢어낼 것도 넘길 것도 남기지 않았다. 기어이 12월이다. 1년이라는 기간은 인간들이 필요에 의해 지구의 공전주기를 인간 삶에 편입시켜 합의한 사회적 약속이다. 참 고마운 약속이다. 새로운 한해인 내년이 있기에 새로운 희망을 꿈 꿀 수 있다. 망년(忘年)은 한해를 잊으라는 것이고 송년(送年)은 한해를 보내라는 것이다. 슬프고 가슴 아픈 일은 잊어야 한다. 보내야 한다. 삶을 이어가려면 잊어야 한다. 야미가 그랬듯이 우리도 잘 알듯이.
새해에는 여러분 모두 지극히 사랑하고 지극히 사랑받으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