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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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명숙 청주문인협회 회장
  • 승인 2024.12.18 1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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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무작정이란 계획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때로는 무작정 떠나서 만나는 풍경만으로도 혼자라는 결핍은 만족으로 충만하기도 하다. 웅장함과 고독감이 공존하는 장소에서는 차마 내뱉지 못한 말들이 슬픈 서사가 된다.

계획하지 않은 여행이었다. 사람을 잘 사귀지 못하는 성격이라 동행이 없는 낯선 일행 틈에서 서먹하면 어쩌나 하는 걱정도 있었다. 출국하는 날, 공항에서부터 우려는 현실이 되었다. 함께 수다를 떨고 차를 마실 사람 없이 혼자 앉아 마냥 즐거워하는 이들을 바라보다 괜스레 머쓱해져서 시선을 돌리기도 했다.

몇 년 전부터 장자제를 가보고 싶었으나 여러 이유로 실행에 옮기지 못했다. 만만한 사람은 이미 다녀왔고 친구들은 건강을 이유로 엄두를 내지 못했다. 문명의 덕을 본다 해도 산을 오르내리는 일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닐 터라 억지를 부릴 수도 없었다.

떠나기 전 목표는 오로지 하나였다. 이미 마음으로는 ‘아무것도 안 하고 있지만 더 격렬하게 아무것도 안 하고 싶다’를 제대로 실현해 보자는 거였다. 여행할 때 반드시 무언가를 해야만 한다는 것도 강박이어서 빡빡한 일정에 오히려 피로만 쌓였던 경험도 적지 않아서다. 역사 깊은 유적지나 유물을 보고 아득하게 멀어진 시대로 돌아가 깊은 생각에 빠질 필요가 없으니 제대로 마음을 비우고 쉬는 것에 대한 실험이기도 했다. 그러나 현지에서의 첫날부터 내 마음이 얼마나 간사한지 절실하게 느끼고 말았다. 순수한 자연경관을 보는 순간, 마음이 서늘해졌다. 나도 모르게 눈 속에, 머릿속에 가득 담으려 욕심을 내고 있었다.

첫날, 칠성산을 오르면서부터 대자연 속에서 참으로 왜소해지기 시작했다. 원 가계와 천문산, 황룡 동굴의 경이로움은 끊임없이 감탄하게 만든다. 발아래 아찔하게 펼쳐진 협곡의 풍경, 웅장하고 기이한 석회암 기둥들, 걸을 때마다 마주친 장엄하고 아름다운 풍경을 마주칠 때마다 샹그릴라나 유토피아라 불러야 마땅할 이상향으로 들어선 듯한 감동에 휩싸이곤 했다. 각기 다른 기암괴석과 구름과 바람들을 만나고 헤어질 때마다 그리운 사람의 이름을 부르게 된다. 변함없이 자리를 지키고 오고 가는 사람들을 무념무상으로 맞이하고 보내는 산이다. 그 앞에서 무슨 말이 필요한가, 눈앞에 펼쳐진 풍경이 하도 근사해서 물리적 법칙 따위는 잊고 싶다. 인간의 개입으로 관광객의 수고가 덜어진 이곳에는 사람이 넘치고 있었다. 오래전 친구들과 다녀온 황산과는 또 다른 감정이었다. 잔도를 걸으며 잠시 걸음을 멈추고 깊은 사색에 빠질 때마다 타인들만 있으니 부대끼지 않아서 좋고 동행이 없다는 게 참 다행이다 싶기도 했다. 그럼에도 순간 결핍에서 오는 지독한 외로움이 밀려왔다. 젖은 낙엽처럼 무거워지는 마음은 왜일까. 나는 거대한 우주에 떠도는 한 점 먼지에 불과한 보잘것없는 존재라서일까. 아니면 사람 사이 간격의 거리가 좁혀지지 않아서일까.

비우고 편안해지려던 바람은 무산되고 산길에 쌓인 삶의 진실만 발목이 시큰거리도록 밟아보고 온 장자제 여행, 외로움에 목말라 길을 떠나지만 결국 결핍에서 오는 외로움에 못 견디고 돌아왔다. 계획되었거나, 또는 무작정 떠났거나 모든 여행에는 이렇듯 역설이 숨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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