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자생존適者生存이란 말이 있다. 사전적 의미를 보면 ‘생물의 생존 경쟁의 결과, 환경에 적응하는 것만 살아남고 그렇지 못한 것은 도태되어 사라지는 현상’을 말한다. 이는 개체의 생존을 넘어 종의 ‘생존’이라는 결과를 염두에 두고, 그렇게 되기까지의 과정을 더듬어 되돌아본 후 찾아낸 현상이다.
약한 자는 강한 자에게 먹히거나 지배된다는 약육강식의 세계에서 그렇게 되지 않는 약자들이 분명 있다.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종이 있지만, 토끼, 카멜레온 등을 대표적인 예로 서두에 놓는다. 빠르게 달리든, 색을 바꿔가며 포식자의 눈을 속이든, 주변 환경에 적응해서 살아남아 다음 세대에까지 그 유전자가 이어질 때 진정한 적자생존이라 한다.
포식자인 새에게 잡아먹히지 않으려면 역한 냄새가 나는 똥을 등에 짊어지고 다녀야 한다는 유전자 신호를 몸에 새기고 태어나는 애벌레가 있다. 백합긴가슴잎애벌레와 왕벼룩잎애벌레 등이 그렇다. 유전자의 영향은 참으로 신기하다. 어미나 선배의 가르침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애벌레들은 알에서 깨자마자 자기 등에 첫 똥인 배내똥을 누어 쌓기 시작해서 몸을 다 덮을 수 있을 때까지 똥을 눈다.
이런 어린 애벌레 살이의 과정을 재치 있는 말발과 익살스러운 그림을 얹어 펴낸 그림책이 있다. 제목부터 독자들의 눈길을 사로잡는 <똥방패/이정록 글 ∙ 강경수 그림/창비> 그림책이다. 알고 보면 시쳇말로 ‘헐~~’이라며 수긍할 정도로 적확한 단어 조합인 책 제목이다.
똥이 포식자로부터 애벌레를 보호해 주는 역할을 하니 방패가 분명하다. 그럼에도 “똥 덩어리를 벗어 버리고 싶어!”라며 불만을 품는 애벌레가 있다. 생존을 위해 대대로 물려받은 유전자가 암묵적으로 시키는 일일지라도 거부하며 튕겨 나가려 하는 경우는 분명 있다. 이 책의 주인공이 그렇다.
송아지 똥에 참기름 두른 듯, 아기 돼지 똥에 꿀을 바른 듯 끈적끈적한 똥! 오래된 똥, 이틀 된 똥, 어제 똥, 지금 눈 똥을 등에 지고 다녀야 하니 어찌 그러지 않겠는가! ‘똥을 지고 밥 먹고, 똥을 업고 친구와 놀아요.’ 그러려니 벗어내고 싶은 맘, 충분히 이해가 간다.
그들은 또 안다. 비가 오면 똥이 씻겨 내려가지 않게 나뭇잎 밑으로 몸을 얼른 옮겨야 한다는 걸 안다. 그러나 이를 어쩌나! 불평을 일삼던 애벌레가 잠을 나느라 그만 비를 옴팍 맞고 말았다. 등에 있던 똥은? 당연히 하나도 남김없이 씻겨 내려갔다. 불평이 애벌레는 그제서야 안다. 똥의 역할을!
비에 젖어 춥고 몸은 너무 가벼워져 바람에 날아갈 거 같았다. 그보다 더 큰 위험이 기다리고 있다. 이럴 때를 기다리며 애벌레들에게서 눈을 떼지 않고 호시탐탐 노리고 있던 곤줄박이 새의 부리가 자신을 향해 쏜살같이 내려오고 있다는 것도 알았다. 물론 동료 애벌레들이 똥 내 폴폴 풍기는 자신들의 몸으로 불평이 애벌레 몸 위를 덮어주며 위기를 넘기며 훈훈하게 이야기 끝을 맺는다.
유쾌하게 읽었지만, 책을 덮으며 나는 심각하게 생각해 본다. 외부로부터 오는 위험을 막을만한 나만의 방패가 내 유전자에 있을까? 있다면, 내 아이들에게 물려주긴 했을지 깊이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