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복 패딩을 꿈꾸며
교복 패딩을 꿈꾸며
  • 허종필 청주여자상업고등학교 교사
  • 승인 2024.11.28 17: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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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용구사

이 글이 활자화되어 있을 때 저는 학생과 제주도에서 현장체험학습(요즘은 `소풍'이라는 말을 사용하지 않습니다.)을 보내고 있을 거예요. 제주도에서 신을 신발을 고르다 올 추석 어머니(전 아직도 `엄마'라고 불러요.)와 나눈 대화가 떠올랐습니다.

“엄마 나 신발 많지? 운동화가 5개나 된다.”라고 얘기하며 유년시절 악어 신발 사건(오른발 앞이 밑창과 떨어져 악어처럼 덜렁거리는 운동화를 갈아 신을 것이 없어 한 달 가까이 테이프로 둘둘 감아서 신고 다녔었죠.)을 농담처럼 건넸지만 그걸 똑똑하게 기억하시던 어머니는 “잊지 않고 있단다. 항상 미안하게 생각하고 있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저에게 지난 시절의 어려움과 가난함은 지금의 삶을 축복이라 여기도록 해준 자양분이었음에도 아직 어머니의 마음에는 자식에게 가난의 기억과 상처를 남겨주었고 그것을 당신의 탓이라 생각하고 계셨던 거죠.

1년을 한 달 남긴 이 시기에 학교의 아이들로 눈을 돌려봅니다. 청소년들이 동경하는 연예인들이 매년 비슷한 모양의 여러 브랜드의 패딩 광고를 보며, 아이들의 옷에서 무슨 브랜드인지 알 수 있는 옷들을 보게 됩니다. 그것도 매년 말이죠.

모든 부모들과 가정이 경제적인 여유가 있는 것은 아니죠. 문제는 아이들의 집안 형편과 경제 수준이 더 이상 교복을 통해 가려지지 않고, 격차가 점점 더 드러나는 시대에 살아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번 글을 미리 쓰며 주변에 물어보니 “너무 식상한 주제 아니야?”라는 반응도 있었습니다. “무상교복 시대에 애들이 패딩이나 신발 등으로 개성을 표현하려는 거지”, “다 자기 집안 수준에 맞게 자식들 입히고 그러지 뭐, 그런 걸 신경 쓰는 사람들이 너무 예민한 거야”라는 말을 듣기도 했습니다.

제가 개인적인 경험을 확대 해석해서 무리한 논리를 이끌어가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참 다행이겠지만 저는 아직도 제 눈에는 교복으로 드러나지 않았던 아이들의 집안 사정이 이 추운 계절이 돌아오면 이상하게 저에게는 더 눈에 띄게 보이게 됩니다. 패딩은 봄, 여름, 가을의 아이들의 슬리퍼와 신발의 다른 이름일 것입니다.

경제가 어렵다는 말은 피부로 체감하지만 그 얘기는 나와는 상관없다는 듯이 누구나 보면 알 브랜드의 옷, 가방, 자동차, 액세서리 등으로 꾸미는 사람들의 모습을 봅니다. 이런 기성세대의 모습은 아이들에게 소비문화와 허례의식을 무의식적으로 심어주며 현실의 자신을 초라하게 여기는 세대를 양산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인스타, 틱톡, 쇼츠 등으로 대표되는 SNS(social networking service) 플랫폼의 일상화는 너무나 빠른 유행의 전파로 뭐가 지금 유행인지 따라가기도 어렵게 만들고 있습니다. 타인의 삶을 공공연히 바라보는 것이 일상화된 작금의 현실 속에 손 안의 세계와 다른 현실 세계의 자신과의 차이를 인정하기 힘든 아이들은 사회적 차별과 또래집단과 `다르면 안 돼!'라는 것에서 두려움을 느낄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내 아이가 추운 바람에 움츠리지 않도록 준비한 부모들의 따뜻한 마음이, 어느 아이에게는 더욱 더 움츠리게 만드는 동전의 양면 같은 칼바람으로 가난의 틈을 비집고 들어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 생각합니다.

무상교복 패딩과 같은 방안은 해결책이 될 수 있을까요? 아마 표면적인 해결책의 하나에 불과할 것입니다. 사회적 격차와 경제적 차별이 우리 아이들의 일상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봐야 할 시점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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