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북도가 12년 만에 새로운 지사 체제를 열면서 도청 주차장의 역할과 기능을 크게 바꾸려고 시도하고 있다. 자동차로 가득 차 있던 도청의 평면 공간을, 역시 누구나 예상할 수 있는 `문화', `관광'. `휴식'을 표제로 내세우며 변화시키겠다는 생각으로 시범사업이 진행 중이다.
획기적이고 도전적인 발상이어서 일단 주목은 하되, 그리 급하게 서둘러야 하는가에 대한 우려 또한 간단하지 않다.
오는 12일까지의 `차 없는 도청' 시범사업을 김영환 충북지사는 `개혁을 위한 첫걸음'으로 규정했다. 예고되지 않은 시도라는 점에서 `개혁'의 범주로 삼는 것은 일견 타당하다.
`발상의 전환'을 통한 `개혁'의 성긴 깃발이 맞닥뜨리는 것은 언제나 사려 깊은 성찰과 철학의 빈곤에서 드러나는 정치적 조급성이라는 예상이 크게 어긋나기를 바랄 뿐이다.
`차 없는 도청'에서 내가 가장 주목하는 것은 `공간'에 대한 관점이다. `공간'은 `앞뒤, 좌우, 위아래의 모든 방향으로 널리 퍼져 있는 입체적 범위'로 정의, 구획된다. `시간과 함께 세계를 성립시키는 기본 형식'이라는 철학적 사유와 동시에 `아무것도 없는 빈 곳'을 상징하기도 한다.
자동차 377대가 차지했던 평면 공간 가운데 30%에 미치지 못하는 106면만 개방할 방침이니, `주차공간의 대부분'은 일단 아니다. 그러니 `차 없는 도청' 역시 상징성이 농후하므로 `출근 전쟁'식의 맞대응 또한 가보지 않은 길에 대한 두려움에 불과할 수 있다.
다만 김영환 지사의 구상대로 `도청을 도심의 문화 공간으로 바꿔 도민이 즐기며 쉴 수 있게 만드는' 일을 106대 분량의 도청 맨땅에서 해내는 일에는 `어떻게'라는 숙명적 콘텐츠의 과제가 있다.
충북도청은 청주시 원도심에 있으나 청주시민의 일상 생활공간으로 여겨지지 않았다. 공직사회 즉 지방정부와 예산, 정책 등의 위력이 집중된 정치와 자본의 `수직 권력'의 세계였으며, 그러므로 `수평 권력'의 시민은 충북도청을 청주에 속한 공간의 하나로 생각하지 못했으니 당연히 `문화·관광·휴식' 차원의 접근 역시 쉽지 않았다.
일제강점기에 건축된 충북도청은 2003년 제55호 국가등록문화재로 지정될 만큼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정원을 단장하고 일부 담장을 철거한 적도 있으며, 작은 음악회와 문화재 야행 등 문화 예술 관련 행사도 끊김 없이 열리기도 했다.
그러나 이같은 행사는 포괄적 개방과 소통의 공간으로의 활용이기보다는 직장인인 공무원을 위한 시도에 국한했고, 정작 청주시민은 이를 향유할 권리와 기회를 당당한 시민으로서 누리기 어려웠다. 그동안의 충북도청이 청주라는 도심 한복판에 놓인 `섬'같은 처지였다. 지방자치제도가 정착되면서 도청을 찾아가야 하는 민원의 가짓수가 크게 줄어든 것도 충북도청의 `고립'에 한몫한 셈이다.
공간으로서의 충북도청은 지역 정치의 장소적 토대로서 기능하는 역사적 사회적 근거를 충분히 갖고 있다. 도지사는 지방선거의 주축이며 도정은 지방 정체성의 상징이다. 사람들과의 일상적 상호작용이 왕성해지도록 공간적 정체성의 성찰이 절실한 이유다.
`차 없는 도청'의 정치적 상징성은 이런 주체성의 확보와 청주 도심에서의 조화로운 역할과 기능, 정지와 채움의 각박함에서 벗어나는 동작과 비움, 그리고 나눔의 관점에서 `개혁'이 되길 바란다.
다만 거기 377면을 가득 채우고도 모자랐던 자동차들이 대체로 청주의 어느 곳에서 들고 나는 기능적 흐름이 `문화·관광·휴식'의 명분으로 차단되는 극단의 정치성과 지배권력으로서의 문화적 독점을 경계한다.
법정 주차대수의 구속력에 묶여 단순히 “대체 주차장 조성을 공론화하려는 목적”에 매몰되어 또 다른 도심 공동화 내지는 주차타워 건립이라는 개발 과제를 만들지 말아야 한다.
세상의 모든 도시는 공간의 확대를 통해 규모의 확장과 경제적 성장을 추구한다. 그 공간의 구조와 필요성은 모두 사람에 의한 사람을 위한 기능의 구축을 위해 `고정적'이었다.
지리적 공간인 충북도청 주차장이 사회적 공간으로 거듭나는 길. `차 없는 도청'이 숨 막히게 가득 채우는 성장과 공간의 독점에서 벗어나 이동과 소통의 모빌리티 도시로 진화하는 시작이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