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논단
연규민 <칼럼니스트>미모의 영국배우 레이첼 와이즈가 주연한 영화 ‘The Whistleblower’가 있다. 2010년 제작된 것으로 우리에겐 ‘내부고발자’로 번역되어 소개되었다. 미국에서는 내부고발자를 Whistle Bl
-wer라고 부르는데 ‘호루라기를 불어 세상에 부정과 위험을 알리는 사람’이라는 뜻으로 사용된다. 우리나라에 호루라기 재단이 활동하고 있다. 주로 공익제보자를 보호하는 일을 한다. 현역 중위 신분으로 군 부재자투표부정 양심선언을 했던 이지문씨가 상임이사를 맡고 있다.
주인공은 내전으로 만신창이가 된 보스니아에서 유엔평화유지군의 일원으로 경찰업무를 담당한다. 놀랍게도 남자 인구의 절반이 내전으로 죽고 없는 나라에서 인신매매를 이용한 매춘과 성 산업이 호황이다. 유엔에서 파견한 치외법권을 가진 자들의 소행이다. 엄청난 조직이 저지르는 사건과 맞서 싸우는 한 인간의 처절한 투쟁을 그리고 있다.
주인공이 유엔평화 유지군과 관련한 전쟁범죄를 밝혀내자 곤란해진 유엔 측과 유엔을 따라 이곳에 진출한 기업체들은 내부고발자인 그녀를 해고하고 사건을 덮으려 한다. 보스니아에서 기업들이 대규모 사업을 수주하는데 이 사실이 알려지면 걸림돌이 되기 때문이다. 주인공이 마지막으로 기댄 곳은 영국의 BBC이다. 그러나 언론의 폭로 후에도 달라진 건 없다. 인신매매로 끌려온 십대 소녀들을 상대로 변태적인 성행위와 매춘을 즐겼던 자들이 본국으로 송환되었을 뿐이다. 처벌받은 자는 아무도 없다. 주인공은 이 사건 때문에 어느 곳에서도 일자리를 구하지 못했다. 지구 어디서나 내부고발자의 운명은 가혹하기만 하다.
청주시장은 최근 옛 청주연초제조창 매입비리 사건 등 일련의 비위사건과 관련해 ‘백배사죄’라는 표현을 쓰면서 시민들에게 주간업무보고자리에서 사과하고 공직비리 척결대책 마련을 약속했다. 청주시에 전국에서 처음으로 공직비리 척결을 위한 민관협의체가 구성된다는 보도도 있다. 시민사회단체 및 각계인사 20여명이 참여해 공직비리 근절방안 수립과 함께 감사업무 모니터링, 감사제언 등을 할 것으로 보도되었다. 기존의 시민감사관제처럼 유명무실하게 운영될 수 있다는 우려와 함께 실질적인 활동방안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다.
청주시의 부정과 비리는 내부 감사에서 밝혀진 것도 아니다. 또한 내부 고발에 의한 것도 아니다. 부끄럽게도 서울에서 거래 상대방에 대한 다른 사건의 조사에서 드러났다. 청주시장이 별도의 기자회견이나 시민이 모이는 광장에 나와 사과하지도 않았다. 주간업무보고 자리에서 하는 사과는 시민입장에선 참 불편하다. 공직비리척결을 위한 민관협의체를 만들기 전에 시민들과 소통부터 하는 게 우선이다. 열린 정부 2.0 구상은 통신수단의 발달을 전제로 한다. SNS를 통해서 직접 시민들께 사과를 할 수도 있다. 시민의 아이디어를 빌릴 수도 있다. 심지어 큰 비용과 시간을 들이지 않고 시민투표도 할 수 있다. 일처리 과정을 일목요연하게 볼 수 있고 과정상의 적절성도 감시할 수 있다.
공직자의 부정과 비리에 대해 내부고발자를 보호하는 법으로 ‘부패방지법’이 있다. 이 법은 비리 공직자에 한정되기 때문에 기업체나 그 밖의 기관 단체에 적용할 수 없다. 2011년 9월 30일부터 시행되는 ‘공익신고자보호법’은 민간분야에 전반적으로 적용된다. 그러나 이러한 법이 있다는 사실을 시민은 잘 모른다. 절차가 까다로워 내부고발자가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점도 있다.
청주시가 공직비리척결을 위한 민관협의체를 만드는 것과 함께 꼭 해야 할 것은 내부고발자 보호를 위한 실질적인 규정을 만드는 것이다. 언론을 통한 고발이나 시민단체를 통한 고발에도 고발자를 보호할 수 있는 규정을 만들어야 한다. 내부고발 없이 공직사회 내의 부정과 비리를 척결한다는 말은 거짓말이다. 시민사회에서 민관협의체에 위원으로 참여하는 것보다 시급한 것은 내부고발자를 위한 보호 대책과 그들이 당하는 생계 문제를 돕고 소송을 지원하는 기금과 제도를 확보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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