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반짝 꽃샘추위에 눈까지 내렸다. 한낮 샛노란 꽃을 터트렸던 크로커스는 꽃망울을 열지 않았다. 노란 술잔의 꽃을 피운 복수초는 눈 속에 뒤덮여 흔적만 보인다. 봄을 환영하며 줄지어 노란 꽃을 달았던 영춘화는 흰 분을 칠하고 수줍게 숙였다. 다시 겨울이 시작되는 건가? 온 세상이 흰 세상이다. 지지난 주는 진눈깨비에다 싸락눈이었는데, 오늘은 제법 눈다운 눈이 내렸다.
바람이 제법 분다. 까치집이 휘청휘청 흔들린다. 까치 한 마리가 둥지에 들어가질 못한다. 안절부절 둥지 주변만 맴돈다. 이가지 저가지 옮겨 다니다 끝내 둥지 안에 들지 못하고 다른 곳으로 날아간다. 많은 노란 꽃들이 핀 3월 중순인데 이 무슨 일인가? 오는 봄을 시샘하는, 가는 겨울을 아쉬워하는 눈, 바람의 놀부심보다.
지난 주말 까치집에는 제법 큰 사건이 있었다. 여느 때 보다 짖는 소리가 크고 날카로웠다. 짖는 정도를 넘어 공습경보에 버금가는 경보음이었다. 시커먼 커다란 비행물체가 하늘을 날고 있었다. 예상할 수 없는 난해한 비행이었다. 반경은 크지 않았다. 커다란 날갯짓에 해 가리기를 반복했다. 역시 검은 새인데 흰색이 더해진 많이 작은 비행물체가 그 뒤를 쫓고 있었다. 처음엔 한 마리가 쫓고 한 마리가 쫓기고 있었다. 위로 솟구쳤다가 아래로 곤두박질치다 다시 수평비행에 순간 가속을 하다 급선회했다. 다툼의 영역은 크게 벗어나질 않았다. 까치집 둥지 근처에서 벌어진 일이다. 곧이어 한 마리의 시커먼 비행체가 합세했다. 어디서 날아왔는지 두 마리대 한 마리의 결전이 벌어졌다. 결국, 둥지 안에 있던 한 마리까지 출격이다. 하늘에 커다란 비행물체와 공중에 전투 소리로 채워졌다. 무엇 때문인지 알 수 없으나 그렇게 결전은 한동안 지속하였다.
지난해 이맘때 고양이와 한 참 싸운 일이 있었다. 하루 이틀 싸운 게 아니다. 10여 일 동안 지속한 지루한 싸움이었다. 주변에 고양이들이 많아서, 경계해야 할 적이 많아 둥지에 제대로 있었던 날이 없었던 듯하다. 한 마리 쫓아내면 한 마리가 둥지의 무엇인가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었다. 전광석화같이 공격하고 빠지기를 반복했다. 경계와 위협의 소리는 빠져 날리는 깃털을 건드렸다. 어느 날은 비둘기와 싸우는 싸움닭, 아니 사나운 쌈까치가 되었다.
왜! 쌈닭도 아닌데. 이맘때가 되면 하루가 멀다고 싸우는 것인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아니 분명히 알 수 있다. 이맘때 알을 낳고 품을 때인 것이다.
한겨울, 까치에게 하루하루는 같은 듯 다른 하루였다. 매일같이 가지를 물어다 집을 수선하는 고된 시간을 버텨냈다. 단독주택을 가지고 있으니, 매년 매번 수선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지만, 새로운 새 식구를 맞이함에 혹독한 추위와 눈보라는 그럭저럭 참을 만했던 듯싶다. 너무 심하다 싶으면 눈비 바람을 피해 둥지를 떠난 적도 있었으나,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 힘드니 가끔 추슬러야 할 때도 있었을 테니, 회피한 건 아니었음이다.
시끄럽게 하던 것들은 결국 포기했다.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동네방네가 떠들썩할 정도였으니, 절대 중단을 모르는 강적임을 알았기에, 싸울 상대가 절대 아님을 알기에, 포기가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결국, 저녁이 되어 괴롭히던 것들이 하나둘 어디론가 자취를 감췄다. 조용히 하루가 마무리되는 시간이 되었다.
그렇게 시끄럽던 주말을 보내고 주일 아침이 되었다. 사방이 젖어있다. 밤사이 보슬비가 내린 것이다. 너무나 조용히 내려 듣지를 못했다. 창문 커튼을 열어 까치 작업을 확인한다. 여전히 열심이다. 보든 보지 않든, 하던 일이었으니 그럴 만하다. 어쩌면 알을 아직 낳지 않았을 수도 있다. 그러나 매년 치르는 하루하루의 날은 결코 편안한 날 없음을 안다. 그렇지만 둥지 안에서 일어날 새로운 기적 같은 일도 알고 있음이다. 그날이 멀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