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혼살림을 청주에서 시작한 그 시절, 사실 남편 직장은 서울이었다. 그때부터 시작된 남편의 서울 출퇴근길. 이게 말이 되나 싶겠지만, 그렇게 남편은 십 년이 넘도록 청주와 서울을 매일 오갔다.
지나고 보면 다 괜찮아 보이겠지만, 사실 그 당시는 괜찮지 않았다. 더군다나, 아이가 태어나고부터는 독박육아의 현실을 온몸으로 부딪쳐야 했고, 남편은 장고의 시간을 출퇴근길에 다 쏟아부어야 했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부부가 선택한 모든 일에 영향을 받는 건 아이라는 사실이다. 첫째 아이는 새벽에 출근하고 새벽에 퇴근하는 제 아빠 얼굴도 잘 기억하지 못하였다. 그게 가장 어려운 지점이었다. 또 주말에도 출근해야 하는 상황이라, 가족의 생이별은 늘 이어졌다. 결국, 우리는 이 사태에 대한 해결책을 마련해야 했고, 남편은 제안했다. 주말에라도 같이 지내자는 것이다. 어떻게? 그래서 제안으로 내놓은 게, 주말 회사 출근 때에 우리 가족 몽땅 다 같이 상경을 하자는 것이었다. 대신, 기차를 타고 가자는 것이었다.
그 당시, 하루 한 번 서울로 가는 충북선 무궁화호가 있었다. 뭐, 나름 여행가는 기분도 날 것이고, 차를 운전하여 힘들게 오가는 것도 아니니, 괜찮을 듯 싶었지만~ 육아 시절, 아이를 데리고 집 밖을 나가기도 쉽지 않은 일 아닌가? 그래. 그래도 해보자. 온종일 집안에서 아이랑 둘만 있는 시간도 지겹고, 우리도 좀 가족답게 살아보자~라는 생각으로 그 제안을 실행하기로 했다.
어땠을까? 뭐에 신났는지 나는 늘 3단 찬합의 도시락을 정성껏 준비했다. 초록빛 간결한 호박전에 얌전히 부쳐 낸 계란말이, 또 달콤 간장맛 풀풀 나는 불고기 그리고 완두콩으로 때깔낸 흰밥, 전장 김 1봉지까지 모든 것이 재밌는 기차여행의 옵션이었다고나 할까? 거기에 빠지면 안 될 찐 달걀과 고구마까지. 새벽에 준비한 찬합 도시락과 아이 장난감 등을 들고 우리는 청주역에서 서울로 향하는 충북선 무궁화호를 타기 시작했다.
열차에 오르자마자 짐을 던져두고 식당칸으로 먼저 가 밥부터 먹던 기억들이며, 열차 칸을 오가는 역무원이 파는 사이다 그리고 과자까지 모든 순간이 다 재밌고 맛나고 그랬다.
가족 셋이서 주말마다 충북선 무궁화호를 타던 그때를 어찌 잊을 수 있을까? 그러다 둘째도 태어나 주말 충북선 무궁화호에 합류하기 시작하였다. 마주한 열차 좌석이 신기한 듯 자리하던 아이들, 열차 차창 밖으로 이어지는 내륙의 사계절을 셋이서, 또 넷이서 함께 보고 함께 먹고 재잘거리며 십여 년의 세월을 그렇게 보냈다.
새벽 끝 집에 들어서던 아빠도, 그 아빠를 기다리며 아이들을 키워내던 엄마도, 부모 손에 이끌려 주말마다 서울행 충북선 무궁화호를 놀이기구 타듯 오르던 아이들도 모두 그때 그 시절의 이야기들로 성장하였다. 우리는 그렇게 우리에게 처한 상황과 환경 속에서 우리의 행복을 찾아 기차를 타고, 세월을 보냈나 보다.
가족을 든든히 먹여줬던 맛난 엄마 손도시락처럼, 가족을 무던히 태워주던 충북선 무궁화호에게 고맙다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어떤 경험들은 사람을 설레게 하고, 신나게 한다. 그런 순간을 가족들과 함께해서 행복했다. 그러니, 충북선 무궁화호가 고마울 수밖에~ 충북선 무궁화호야, 고마워. 건강해야 해! 잊지 않을게^^ 무던히 오고 갔을 충북선 무궁화호, 네가 존재하도록 애썼을 많은 손길들에도 감사의 인사를 전해주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