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가 엊그제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가결했다. 헌법재판소가 최종 판단을 내릴 때까지 대통령의 직무가 정지된다. 대통령이 위헌적 비상 계엄을 강행했다 국회에서 저지당한 지 열흘만이다. 탄핵에 찬성하는 절대 다수 국민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으나 그 안도감의 한켠에 지리잡은 의구심까지 해소하진 못했다. 불법적으로 군대를 동원해 내란을 주도한 혐의로 수사를 받는 대통령이 국회의 계엄 무효화 이후에도 열흘 가까이나 자리에 눌러앉아 국군통수권 등의 권한을 온전히 누리는 일이 어떻게 가능한 걸까? 실제로 대통령은 조속히 직권에서 배제시켜 추가 일탈을 막아야 한다는 여론에도 불구 국방장관 후임을 지명하고 진실화해위원장 임명을 재가하는 등 인사권을 당당하게 행사했다. 비상계엄의 위법성을 수사하는 경찰이 대통령실 압수수색에 나섰다가 경호처와 대치하는 장면에선 많은 국민이 거꾸로 도는 시계추를 바라보고 있어야만 하는 무력감을 겪어야 했다.
이 도착적인 상황을 유지시킨 원동력이 여당인 국민의힘이다. 여당은 탄핵 반대를 당론으로 정하고 1차 표결을 보이콧해 무산시켰다. 대통령이 “지금 잠시 멈춰 서지만, 결코 포기하지 않겠다”는 얼토당토않은 담화를 내놓아 여론이 더 나빠지자 2차 표결에선 마지못해 의원 자유투표를 허용했다. 당은 탄핵불가 당론을 유지하며 이탈표 방지에 나섰지만 최소 12명의 의원이 찬성표를 던져 탄핵안은 국회를 통과했다.
국민의힘이 압도적 여론에도 불구 탄핵 절대불가에 매달리는 까닭은 무엇일까? 이런저런 구실을 내걸지만 이유는 딱 한가지로 보인다. 탄핵불가론을 주도해온 윤상현 의원의 주장에 답이 나온다. 그는 “대통령 개인을 지키려는 게 아니라 대한민국 체제, 미래와 후손들을 지키기 위해 반대한다”며 “무도한 이재명 대표의 민주당에 정권을 헌납할 수 없다”고 했다. 대다수 의원이 이 주장에 공감하는 것으로 미뤄 탄핵이 결정돼 조기 대선이 치러지면 민주당 후보로 나설 이재명을 이길 수 없다는 확신에 당이 빠져있는 것 같다.
탄핵에 반대하는 의원들은 지난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후 치러진 대선에서 참패한 흑역사를 되풀이 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탄핵 대통령을 배출한 정당의 운명적 패배를 예견하는 모습이다. 하지만 당시 문재인 민주당 후보는 대통령 탄핵을 관철한 촛불광장의 어마어마한 지지세를 등에 업고 출마해 당선됐으나 득표율은 41.08%에 그쳤다. 홍준표 자유한국당 후보가 24.03%를, 제3의 정당인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가 21.41%를 가져갔다. 보수 표도 온전히 챙기지 못한 자유한국당의 참패를 탄핵에 따른 필연적 결과로 받아들여야 할까?
대통령 탄핵안이 국회에서 통과된 당시 여당은 결속과 쇄신으로 당의 재건을 꾀하는 대신 분열의 길을 택했다. 친박과 비박으로 갈려 당권 다툼에 몰두했고, 18일만에 김무성·유승민 등 비박계 의원 29명이 당을 뛰쳐나가 신당을 만들었다. 그때 새누리당이 하나로 뭉쳐 탄핵 표결을 당한 대통령을 배출한 정당으로서 책임을 지는 모습을 보였다면 대선 결과가 달라졌을 지도 모른다. 당을 쪼개고 서로를 배신자로 몰아붙이는 악다구니 대신에 뼈를 깍는 반성과 개혁으로 정권 재창출 역량을 보였다면 좌우 가운데서 흔들리던 중도 표심이 국민의당으로 쏠리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당시 유권자들은 백척간두 위기 상황에서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분열로 치달은 시대착오적 행태를 심판했을 지 모른다.
지금 국민의힘에서 8년 전괴 유사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탄핵 표결 직후 찬성 의원들에게 배신자 굴레를 씌우는 거친 공격이 시작됐고 친윤과 친한 계파 갈등도 노골화 하고 있다. 최고위원들의 잇단 사퇴로 지도부가 와해됐고 비상대책위 구성을 놓고 신경전도 진행 중이다. 탄핵 표결을 둘러싼 당내 분쟁부터 종식하길 바란다. 지금 국민의힘에게 주어진 1차 과제는 이재명이 사법 리스크로 낙마할 때까지 기다리는 것 말고는 뾰족한 대선 전략이 없는 당으로 치부되는 당밖의 인식을 바꾸는 것이다. 그 필수 조건이 내부 결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