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디 가만히 있지 않았으면
부디 가만히 있지 않았으면
  • 이욱 충북대 사대부고 교사
  • 승인 2024.12.12 09: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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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 작가가 노벨 문학상 수상을 위해 스웨덴에 갔음을 뉴스를 통해 접했다. 나 역시 여느 사람들처럼 한강 작가의 노벨 문학상 수상이 반갑고 기뻤으며 앞으로도 자주 학생들과 더 많이 그의 작품을 찾아 읽게 될 것이란 생각을 했다. 그런데 이번 뉴스는 마냥 기분이 좋지는 않다. 그가 수상을 위해 한국을 떠나 있는 동안 정작 우리는 그가 작품에서 다룬 비극을 다시 마주했다. 생각하기 싫지만, 만약 2024년의 서울에서 1980년 광주와 비슷한 모습의 비극이 찾아왔다면 우린 한강 작가의 노벨상 수상소감을 들을 수 있었을까?

1980년 5월의 광주를 다룬 여러 책이 있지만 그 중 유독 ‘소년이 온다’는 묵직한 슬픔을 느끼게 한다. 한강 작가 특유의 마음을 움직이는 필력도 있지만 아마 평범한 소시민들의 일상이 무너지는 과정이 너무 아프게 다가오기 때문일 것이다. 광주민주항쟁의 한가운데에 있는 여러 사람의 눈으로 그려지는 작품은 마치 가족, 친구, 아니면 나 자신이 그날의 광주에 있는 것처럼 느끼게 한다.

평범하게 일상을 살아가던 인물들이 겪는 고통의 시간이 책을 읽는 나의 고통이 되어 슬프고 안타깝다. 그래서 한강 작가가 집필한 여러 작품 중에서 ‘소년이 온다’를 학생들과 함께 가장 많이 읽었다. 나도, 학생들도 책장을 넘기며 슬퍼했고 분노했다. 그리고 그날의 시민들에게 많이 감사했다. 학생들은 광주시민들의 희생 위에 만들어진 우리의 삶과 일상의 의미를 재조명하는 서평을 써왔다. 학생들의 서평을 읽으며 나도 무난한 일상이 얼마나 값진 시간인지를 다시 생각했다. 그리고 학생들이 앞으로 살면서 누군가의 희생 위에 존재하는 각자의 삶을 소중히 생각했으면 했다. 여기까지였다. 나는 내 교실을 거쳐간 이들이 그 날의 아픔과 마주할거라고는 한순간도 생각하지 않았다.

일상이 깨지고 슬픔이 밀려올 때, 나는 선생으로서, 어른으로서 학생들에게 무슨 말을 해줄 수 있을까? 교직에 들어서고 나서 온 국민이 마음 아파하는 일들을 많이 겪었다. 세상은 이 사건들을 두고 ‘참사’라 불렀으며 수많은 사람의 일상이 송두리째 파괴된 채로 슬퍼하고 분노하고 서로 갈등했다.

이런 일들이 있을 때마다 교실에서 맑은 눈으로 내 생각을 묻는 미래 세대에게 어떻게 말해줘야 할지 난감했다. 그리고 좋은 세상을 만들어주지 못하는 기성세대가 된 것이 그들에게 너무 미안하고 부끄러웠다.

학생들은 아마 이번 일에 대해서도 가까운 어른인 우리가 어떻게 말하고 행동하는지를 볼 것이다. 그들에게 내가 해줄 수 있는 말을 생각해서 적어본다.

어른으로서 너희에게 좋은 세상을 만들어주지 못해 정말 미안하다. 부족한 능력이지만 더 좋은 세상을 만들어서 너희와 함께 살기 위해 내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겠다. 하지만, 부디 가만히 있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미 우리 세대는 너에게 어른들이 안전하게 보호해주고 해결해줄 테니 ‘가만히 있으라.’고 이야기할 자격을 잃었다.

그러니 치열하게 생각하고 이치에 맞게 행동해라. 유대인들을 죽이라는 히틀러의 악한 명령을 성실하고 착하게 수행한 아이히만이 되어서는 안 된다. 다른 사람의 지시와 명령보다 지금, 이 순간에 어떤 말과 행동이 옳은지를, 어떻게 움직여야 너와 너의 일상을 지킬 수 있을지를 치열하게 생각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 치열한 생각의 결론을 빠르고 정확하게 행동으로 옮겨라. 예기치 못한 사고나 다른 어떤 누군가가 무도한 방법으로 너의 소중한 일상을 깨버리도록 놓아두지 말아라. 너의 일상과 미래는 너의 것이다. 누군가 대신 지켜주길 기다리지 말고, 스스로 지킬 수 있는 힘을 키워나가라. 그 과정에서 나는 너의 조력자가 되어줄 것을 약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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