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이야기로 만들었던 슈바이처 박사는 나의 처음 꿈이 되어주신 분이다.
집집마다 거실을 빛냈던 위인전 전집세트는 옛 시절의 교육 열풍이었다.
모두가 위인전에 나오는 주인공들을 꿈꾸지 않았을까? 위인을 향한 꿈들이 신기루였다면, 중학 시절 몽글몽글 피어나던 작은 꿈들은 조금 현실적이었다.
나의 첫 번째 꿈은 대학을 가는 것이었다.
대학을 가야 했던 이유는 나의 중학 시절에서 찾을 수 있다.
중학교를 입학하던 날, 나는 소아마비로 몸이 불편한 친구와 같은 반이 되었다.
목발을 지탱해서 걸어야 했던 그 친구는 혼자 학교를 오갈 수 없었다. 같은 동네에 사는 학생을 조사할 때 나만 손을 들어서, 결국 그 친구의 가방을 들어주며 등하교를 돕는 일은 내 몫이 되었다.
그런데, 그게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 어떤 택시도 목발을 짚고 서있는 내 친구와 나를 태워주지 않았다.
14살의 소녀들이 겪었을 그때의 하루하루들은 마음 깊이 쌓여갔다. 친구와 동고둥락했던 중학시절 3년의 세월은 지났고, 나는 취업을 준비하는 학교로 진학을 했다.
그 후 취직하면서 그때의 마음을 잊고 살았다. 결국은 돌고 돌아, 어릴 적 꾸었던 꿈을 찾아 나섰고, 수능시험을 보고, 운 좋게 원하던 대학에 입학했다.
특수교육을 전공하고, 4년 후 졸업하면서 그렇게 나는 나의 첫 번째 꿈을 이뤘다.
대학 3학년 때, ○○학교에 가야겠다 생각을 했다. 그리 생각하게 된 연유가 있었다.
충북으로 임용고시를 치렀다. 어찌 되었을까?
가고자 했던 ○○학교에 첫 발령을 받게 되었다. 그 후 25년이 흐른 지금 특수교육 현장의 한 모퉁이에 서 있다.
오래도록 교실 현장을 지키고 싶었다. 원하고 바라는 것을 학교 현장에서 일궈내고 싶었다.
묵묵히 지켜내고자 했던 마음들이 매일매일 쌓여가길 바랐던 게 두 번째 꿈이었다.
그런데 앞으로도 이 꿈이 이어질지 잘 모르겠다.
세월은 흘러 시스템이 좋아진 것 같지만, 또 많은 것들이 특수교육 현장을 질퍽거리게 만든다. 나만 느끼는 걸까?
과연 교실 현장을 생각대로 지킬 수 있을지 잘 모르겠다. 이렇게 두 번째 꿈은 불확실하다.
그렇다면 세 번째 꿈은 무엇? 나는 배우는 게 참 좋다. 좋아하는 것들을 알고 싶다. 호기심 딱지가 내 안에서 두둑하게 쌓여간다.
하하하하하하~ 뭘 그리 좋아하는 게 많은지 나도 잘 모르겠다. 운동도 좋고, 한글 서예도 좋다. 그림과 글쓰기는 전문적으로 배우고 싶다. 음악을 온종일 듣고 싶고, 클래식 음악을 듣고 있노라면 정말 좋다.
또 교육학과 낭독 공부도 짭짤하게 재미있다. 몰입하는 시간이 정말 좋다. 그래서인지 시간이 부족하다. 어디서 시간을 사오고 싶을 정도이다. 그래서 세 번째 꿈은 ~ING다.
끝나지 않았다. 좀 단순한 네 번째 꿈은 나의 사람들과 같이 밥을 먹고, 차를 마시며 인생 이야기를 나누며 살고 싶다. 일하고 사랑하며 인생을 배워가는 내가 되고 싶다.
그렇다. 소박한 매일을 꿈꾸며, 하루를 도전할 수 있다면 그것 또한 지극한 행복이리라.
일상이 우리를 힘들게 하고 지치게 해도 깊고 푸른 밤마다 꿈꾸고 싶다. 깊고 푸르게~
구용구사 < 九容九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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