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날의 기억, 잠깐 반짝이다 지는 여우별 아니길”
“그 날의 기억, 잠깐 반짝이다 지는 여우별 아니길”
  • 이용주 기자
  • 승인 2024.07.11 19:4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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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송참사 1주기-희생자 유가족 옴니버스 리포트
아들바라기 엄마 깊은 상실감에 멈춰버린 일상
버스 운전사의 아내 두 번 울린 지자체 무관심
`부실 재개통' 막은 유가족 대표 2차 가해 고통
오송참사 유가족·생존자, 시민단체 등이 11일 오후 청주시청 임시청사 앞을 행진하고 있다. 이들은 지난 8일 참사현장인 청주시 오송읍 궁평2지하차도를 시작으로 이날 충북도청까지 청주시내 곳곳을 도보행진하는 '기억과 다짐의 순례'를 진행했다. /뉴시스
오송참사 유가족·생존자, 시민단체 등이 11일 오후 청주시청 임시청사 앞을 행진하고 있다. 이들은 지난 8일 참사현장인 청주시 오송읍 궁평2지하차도를 시작으로 이날 충북도청까지 청주시내 곳곳을 도보행진하는 '기억과 다짐의 순례'를 진행했다. /뉴시스

 

# 궁평 지하차도 참사가 앗아간 아들의 생일상.

○…“제가 아들과 얼마나 가까웠냐면, 주변에서 어른이 된 아들과 너무 붙어 있는 거 아니냐고 지청구를 받곤했죠.”

경북 상주에 살던 최정규씨(여·50대)는 아들바라기였다. 봄바람이 부는 4월이 되면 아들 손을 잡고 벚꽃 구경을 다녔다. 주위의 시샘어린 말에 며느리감이 생기면 그때부터 아들을 옆에서 지켜봐야 겠다고 생각했지만, 서른을 훌쩍 넘도록 커버린 아들이 야속하기도 했다.

일생 최악의 악몽이 된 그날을 며칠 앞둔 7월13일은 아들의 32번째 생일이었다. 최씨는 청주에 살고 있던 아들과 일요일인 16일, 생일 축하 식사를 하자고 약속을 했다. 토요일에 약속을 잡고 싶었지만 출근해야 한다는 아들말에 하루를 늦췄다. 그게 마지막 대화였다. 토요일 아침, 점심, 저녁…그리고 약속날인 일요일 오전이 돼도 아들에게선 연락이 오지 않았다. 그리곤 아들이 변을 당했다는 남편의 전화를 받았다.

그날 이후 최씨에겐 시간이 멈춰버렸다. 정수기 필터 교체 일을 하는 최씨의 일상은 엉망이 됐다.

“필터 교체를 위해 방문한 고객 집에서 그 분의 아들, 딸을 보면 아들 생각에 가슴이 먹먹해지고, 일 끝내고 집에 와서 또 혼자 울고, 도저히 일을 할 수가 없어 아들을 보낸 지 3개월만에 일을 그만 뒀어요.” 최씨는 “맛있는 음식을 먹어도 아들이 생각나고, 반찬을 만들어도 아들 생각이 나고, 어떻게 살아가야 할 지 모르겠다”며 끝내 참았던 눈물을 흘렸다.



# 유가족 더 힘들게 하는 지자체의 무관심

○…박지아씨는 지하차도 참사 당시 747버스를 운전하던 고(故) 이수영씨의 아내다.

평소에도 몸이 좋지 않았던 박씨는 그 일이 있고 난 후, 하루도 편히 잠들지 못하고 있다.

“잠에 들려고 하면 가슴 안쪽에서부터 먹먹하고 답답한 느낌이 슬슬 들다가 눈물이 난다”는 박씨는 “제가 아플 때마다 다리를 주물러주곤 했는데 이젠 기댈 곳이 없다”며 쓴 웃음을 지었다.

가뜩이나 힘든 박 씨를 더 서럽게 하는건 참사 유족들에 대한 자치단체 무관심이다.

“잠을 너무 못 자다 보니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는데 병원에서 지자체의 치료 비용 지원을 받으려 했더니 유가족 명단에 제가 빠져있었습니다.”

박씨는 “지자체에서 유가족 명단을 만든 사실도 몰랐고 이 명단에 많은 유가족이 빠져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참사가 일어났을 당시에도 유가족끼리 소통할 수 있는 창구도 유가족들이 스스로 만들었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실제 오송참사 피해자 유가족 명단에는 가족별로 1명만을 등록해 놓고 있어 다른 유가족은 지원대상에서 제외된 실정이다.



# 유가족 요청에 개통연기?…“2차 가해”

○…일년 전 14명의 목숨을 앗아간 참사의 현장 궁평 지하차도는 지난달 30일 다시 개통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닷새전인 25일 개통이 전격 보류됐다. 궁평지하차도 재개통을 막은 것은 오송참사 유가족들이었다.

최은경 오송참사 유가족 협의회 공동대표(여·43)는 “당초 지하차도 보수 완공은 7월28일이었는데 재개통이 6월30일로 갑자기 당겨져 그 이유를 충북도에 문의하니 `지하차도를 이용하지 못해 불편을 겪는 민원이 빗발치고 있어서' 였다”고 말했다.

최 대표는 개통 열흘 전 현장에 나가봤다. 개통준비가 제대로 안됐음을 한 눈에 알 수 있었다.

“지난달 19일 현장 점검을 갔을 때 지하차도 벽면 손잡이(핸드레일)의 한쪽면 3분의 1만 설치돼 있었고, 미호천 임시제방도 주변 흙을 쌓아 놓다보니 다음날 고작 20㎜의 비에 임시 제방 둑이 훼손될 정도였어요.” 최 대표는 “유족들의 개통연기 요청을 받아들이지 않던 도가 훼손된 임시 제방 사진을 보내니까 며칠 뒤 유가족들에겐 한마디도 없이 지하차도 개통을 잠정 연기했다”며 “그래놓고 하는 말이 `유가족의 요청'으로 지하차도 개통을 연기했다고 발표하더라”고 말했다.

최씨는 이를 두고 “유가족들에 대한 명백한 2차 가해”라고 울분을 토했다.

/이용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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