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소중립 이후 다시 기후 악당?
탄소중립 이후 다시 기후 악당?
  • 이영진 충청생태산업개발센터 탄소중립위원장 지니플㈜ 대표이사
  • 승인 2024.01.16 18: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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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제로(NET ZERO)칼럼
이영진 충청생태산업개발센터 탄소중립위원장 지니플㈜ 대표이사
이영진 충청생태산업개발센터 탄소중립위원장 지니플㈜ 대표이사

 

“더 늦기 전에 지금 바로 시작합시다. 어렵지만 피할 수 없는 길입니다.”

2020년 10월 28일, 문재인 대통령은 국회에서 탄소중립을 선언했다. 역사적인 이날, 탄소중립 선언은 그야말로 오랜 산고 끝에 태어난 옥동자나 다름없었다.

당시 대통령 직속 국가기후환경회의(현 2050 탄소중립 녹색성장위원회)에서 홍보실장으로 근무하던 필자는 대통령의 탄소중립 선언 소식을 공식 발표 전에 먼저 접했다.

청와대 노영민 비서실장으로부터 이날 아침 “문재인 대통령이 오늘 국회에서 탄소중립을 선언할 예정이니 반기문위원장께 알려드리라”는 내용의 전화를 받았다. 탄소중립선언 소식을 전하자 반위원장은 매우 반겼다. 그러면서 유엔사무총장은 물론 국제기후 관련 지인들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이 소식을 두루두루 전했다.

2015년 12월 파리기후 협정 당시 유엔 사무총장으로 탄소중립을 이끌었지만 정작 한국은 기후악당으로 불리우고 있어 체면이 말이 아니었다. 본인의 나라는 탄소중립도 선언하지 않으면서 다른 나라에 탄소중립 선언을 요청하는 것이 당연히 이율배반으로 비쳐질 수 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반위원장은 실국장회의에서 탄소중립 선언의 당위성을 수시로 강조했다. 더욱이 탄소 최다발생국인 중국마저 2060 탄소중립을 선언한데다 일본마저 탄소중립을 선언한 상황에서 한국은 고립무원의 처지에 놓이게 됐다.

중앙 각 부처 실국장 회의에서도 기재부는 물론 산업부, 환경부간에도 탄소중립 관련 정책에 대한 의견 차이가 많아 항시 논쟁을 벌이곤 했었다. 화석연료에 절대적으로 의존해왔던 산업계에선 당연히 탄소중립 선언을 꺼릴 수 밖에 없었고 환경부는 불감청이언정 고소원 심정으로 눈치만 살피고 있던 상황이었다. 이같은 상황을 수시로 체크해왔던 노영민실장도 탄소중립의 국내외적 움직임에 깊은 관심을 보여왔다.

마침내 탄소중립 선언은 사전 예고없이 대통령 결단으로 단행됐다. 이후 문재인 대통령은 탄소중립의 당위성을 일목요연하게 대국민 TV 연설을 통해 발표했다. 다시금 들어보는 연설이지만 탄소중립 선언의 결정체 내지는 교과서로도 전혀 손색이 없어 보인다.

이때를 기점으로 과감한 기후정책전환이 이뤄지기 시작했다. 최고 정책결정권자의 결단이 중요함을 새삼 깨달았다. 탄소중립 시대에 대응하기 위한 `2050 탄소중립 추진전략'이 마련됐다. 경제구조의 저탄소화, 저탄소 산업생태계 조성, 공정전환 등 3대 정책방향을 정하고 제도적 기반 강화에 역점을 두었다.

`기후대응기금(가칭)' 신규조성, 세제·부담금·배출권거래제 등 탄소가격 체계 재구축, 탄소인지예산제도 도입 검토, 정책금융기관의 녹색분야 자금지원 비중 확대, 저탄소 산업구조 전환을 위한 기업지원, 기업의 환경 관련 금융시장 인프라 정비, CCUS의 R&D 지원, 에너지효율 극대화, 태양전지 등 탄소중립을 위한 핵심기술 개발 지원정책을 담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에 에너지 전담 차관을 신설하기도 했다.

장기저탄소 발전전략(LEDS)과 2030 국가 온실가스 감축 수정 로드맵을 마련하는 등 탄소중립 5대 기본방향과 실천계획도 마련했다. 탄소중립 정책의 전반적인 기본 틀을 마련한 셈이다.

우여곡절 끝에 태어난 탄소중립 선언은 한국이 기후악당 오명에서 벗어나는 듯 했다.

하지만 탄소중립 선언 3년이 지난 지금, 한국은 기후대응에 역행하는 나라로 선정돼 `오늘의 화석상'이란 불명예스런 상을 받았다. 기후악당 프레임을 다시 뒤집어 쓴 꼴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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