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나를 만나
내가 나를 만나
  • 배경은 독서강사
  • 승인 2024.05.08 1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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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가는대로 붓 가는대로
배경은 독서강사
배경은 독서강사

 

나이 탓일까요? 요즘 무엇도 가지런하게 정리가 되질 않아요.

심지어 슬픔까지 도요. 생각의 혼돈에서 오는 것 같은데 지나온 과거를 요약하고 비슷한 카테고리로 나누고 정돈하다보니 생기는 부작용 같기도 합니다.

서랍속의 과거는 옥수수 찌는 냄새처럼 세상 달콤한 풍미로 다가오기도하고 어떤 시간은 도깨비바늘처럼 붙어 하나하나 잡고 뜯어내야 하는 기억도 있어 부끄럽고 괴로운 날도 꽤 있어요.

생각의 정리를 할 때는 주로 음악을 들어요. 이소라의 `Track9'를 귀에 꽂으면 지나온 저의 시간과 고민을 함께 해주는 것 같아 위로가 되더군요. 노랫말처럼 우리는 알지도 못하는 세상에 내가 짓지도 않은 이름으로 불리며 살아가요. 그리고 본능적으로 알지요. 공부나 도덕이나 예의나 도리를 지키며 살아야 한다는 것을요.

성장 통을 지독하게 앓으며 학교에 다녔던 80년대 중 후반, 여성에게는 정해진 진로가 있었어요.

선생님처럼 누군가를 가르치는 일이나 간호사 같은 뭐 무난해 보이는 직업군 있잖아요.

고3 담임 선생님께 철학과에 가고 싶다고 말씀드렸더니 `여자애가 무슨 철학이냐'라고 일축하셨어요.

제 첫 번째 좌절이었는데 후로 전 오랫동안 무기력으로 살았던 것 같아요. 그래서 저는 어떤 사람이 되었냐구요? 모르겠어요.

들숨과 날숨 사이에 섞여 들이치는 권태로움은 지금껏 살아온 시간을 전부 부정하는 것 같아 불안해요.

하지만 살아오는 동안 여성이라서 딸이라서 좋은 학교를 나오지 못해서 특별히 당한 어려움은 거의 없었는데 아마도 이것은 경쟁 사회에 뛰어 들어 살지 않았기 때문인 것 같아요.

맞아요. 생각해보니 지레 겁먹고 시도해보지 않은 일이 많았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자신을 극복하고 경쟁한다는 게 불편하고 힘든 일이잖아요. 결과를 내지 않았다는 자책보다는 시도조차 하지 않은 제가 어리석어 보였던 며칠을 자괴감으로 보냈답니다.

어제는 정하섭이 쓰고 한아름이 그린 작품, <하루살이 입니다>를 들여다보았습니다.

그거 아셨어요? 우리가 알고 있는 그들의 하루는 지상에서의 하루고 그 하루를 살기위해 물속에서 몇 년을 견딘대요. 수많은 죽음의 위협과 거친 물살을, 그리고 더 많은 위태한 경우의 수를 이기고 물 밖으로 나와서 오직! 알을 낳기 위해 고군분투 한다는 거에요.

열악한 환경을 뚫고 알을 낳은 하루살이는 `다 이루었다' 하신 예수님처럼 기꺼이 생을 마친대요.

멋있기도 하고 장엄하기까지 한 하루살이의 생을 훑으며 존재롭게 사는 게 어떤 건지 약간 감이 잡히기도 했어요.

현재 시점으로 돌아와 앉았습니다. 앞으로 살아갈 날이 더 적음이 자명하게 드러나는 지금 이 시간부터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우수수 떨어지는 부스러기만 수습해도 남은 인생은 허기지지 않는다고 이어령 선생은 말씀 하셨지요. 하루살이처럼 맹렬하지 않겠지만 이제라도 제 운명에 자발적으로 개입하고 싶어 나를 들여다보고 또 보며 봄을 보내고 있어요.

이제 덮어놓고 살지는 않아야겠어요. 실은 덮어놓은 것을 들추는 게 철학이고 예술이고 진리잖아요?

`아름답다'의 `아름'은 나를 뜻한다지요.

나답게 사는 게 어떤 건지 지천명 나이에 고민해 봐도 되는 걸까요? 늦은 것은 아닐까요? 아무튼 그럼에도 나답게 살고 싶은 욕망으로 끌어 오르는 날입니다.

예전만큼은 아니지만 곡우(穀雨)의 비가 줄기찹니다. 건강 조심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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