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나물
봄나물
  • 박명자 수필가
  • 승인 2024.05.09 1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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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박명자 수필가
박명자 수필가

 

나는 요즘 시간만 나면 들로 산으로 간다.

봄나물 뜯는 재미에 푹 빠졌다. 어제는 친구의 고향 뒷산에서 나물을 뜯었다.

야트막한 언덕을 오르자 싱그러운 초록이 수런거리며 잎을 틔워 키우고 있다. 양분을 저장한 채 긴 동면을 마친 새싹들은 모두 보약이나 다름없을 것이다.

주말에 올 아이들 밥상에 올릴 생각을 하니 신명이 난다.

사월의 숲은 여기저기서 힘차게 올라오는 생명들의 함성으로 가득하다.

그 많은 풀 중에는 입맛 돋우는 나물도 있겠지만, 먹을 수 없는 풀도 있고 심지어 독초도 있을 것이다. 나물 보는 눈이 어두운 내가 나물을 찾으려니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두 개의 골짜기를 지나는 동안 친구에게 먹을 수 있는 나물도 많이 배웠다.

이제 나도 저만치 나물이 보이면 욕심이 앞서 가파르고 낙엽 쌓인 길도 주저 없이 오르내린다. 한 잎 두 잎 따 담을 때마다 코끝으로 향긋함이 퍼진다.

그 향기에 끌려 나물 뜯기 삼매경에 빠져 시간 가는 줄 모른다.

아슬아슬한 산비탈 나무둥치에 의지해 물 한 모금으로 목을 축이고 나물을 찾아 헤매기를 두어 시간, 보드랍고 연한 산나물이 자루에 그득하다.

적당한 자리를 잡고 우리는 저마다 들고 온 먹을거리를 꺼냈다. 소풍 나온 듯 음식이 푸짐했다.

나무 그늘에 앉아 쉬는데 오래전 나물 보따리를 이고 삽짝 안으로 들어오시던 할머니가 생각난다.

이른 봄이면 할머니는 베보자기에 보리밥 한 덩이를 싸서 산으로 가셨다. 해거름이 되어서야 커다란 나물 보따리를 머리에 이고 마당으로 들어섰다.

마루에 내려놓은 보따리를 풀어 헤치면 뜨끈뜨끈한 열기가 났다. 온 산을 헤매며 수천 번 허리를 굽혔을 할머니, 내가 오늘 내 아이들을 생각하며 유유자적 나물을 뜯었다면, 할머니께서는 가족을 위해 온몸으로 수고를 다 하셨다.

할머니가 나물을 다듬고 삶아서 발에 널고 허리를 펼 때쯤이면 달빛이 마당을 환히 비추었다. 말린 나물은 동그랗게 타래를 만들어 보관했다.

그렇게 말려놓은 나물은 우리 식구가 한겨울 내내 먹을 밑반찬이기도 했다.

오일장이 서는 날이면 모아둔 고사리와 묵나물을 내다 판 돈으로 내 학용품과 용돈을 마련해 주셨다.

타지에 사는 아버지가 생활비를 보태어 집안 형편은 넉넉했지만, 적삼에 땀이 흥건하게 배도록 나물 보따리를 이고 걷던 할머니의 발걸음에는 손녀를 향한 애틋한 사랑이 담겼음을 나는 안다.

그 사랑의 씨앗이 점점 자라 지금까지 내 마음을 풍요롭게 하고 있으니 말이다.

당신의 아픈 손가락이었던 나는 지금 이렇게 씩씩하게 잘 사는데, 이 일상을 한 번만이라도 할머니에게 보여드릴 수만 있다면 하는 부질없는 생각이 봄나물 위로 스쳐 지나간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서둘러 나는 산나물을 다듬고 끓는 물에 데쳤다. 들기름을 넉넉하게 넣고 양념해 무쳤더니 쌉싸름한 봄맛이 입안 가득 퍼진다.

자연에서 얻은 것은 나눠야 제맛이다.

나물을 조금씩 봉지에 담았다. 동기간 같이 지내는 이웃에게 나눠주고 돌아오는 발걸음이 가볍다.

사실은 나물뿐 아니라 모진 겨울을 이겨내고 온 봄을 전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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