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출! 쇼퍼홀릭
탈출! 쇼퍼홀릭
  • 이은일 수필가
  • 승인 2021.08.02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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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이은일 수필가
이은일 수필가

 

또 충동구매를 했다. 아들이 여름 이불이 필요하다 해서 이번 주말에 매장에 들러 사줄 예정이었다. 그런데 어제 혹시나 하고 홈쇼핑 채널을 틀었다가 마침 여름 이불이 방송되고 있는 걸 본 것이다. 방송 중에 사면 퀸사이즈에 싱글사이즈 이불을 얹어 준단다. 게다가 베갯잇과 베개 솜까지 사은품이라니 이게 웬 떡인가 싶어 바로 핸드폰을 들어 주문했었다. 오늘은 살짝 후회하는 맘이 들었지만 이미 이불은 현관문 앞에 도착한 다음이었다.

요즘 쇼핑은 참 쉽다. 물건을 고르는 일도 값을 치르는 일도, 또 혹시 마음에 들지 않아 교환, 반품하게 되더라도 집 안에 앉아 전화나 클릭 몇 번으로 간편하게 해결할 수가 있다. 홈쇼핑이나 온라인 쇼핑몰의 급격한 성장은 소비문화도 바꿔놓았다. 넘쳐나는 물건들 속에서 쉽게 사고 쉽게 버리는 게 일상이 되어 버렸다. 더 좋은 것을 더 많이 소유하려 욕심내고 생활필수품보다는 기호사치품에 열을 낸다. 몽당연필을 볼펜 깍지에 끼워 쓰던 내 어린 시절과는 너무도 다른 풍경이다. 어쩌면 각박해진 세상의 공허한 마음을 채우기 위해 사람들이 꾸역꾸역 물건을 사들이는 게 아닐까?

풍족하게 자라지 못해서 그런지 나 역시 좋은 물건에 대한 욕심이 좀 많다. 아이들이 어느 정도 자라 시간적 여유가 생겼을 즈음부터 홈쇼핑 방송을 보게 되었는데 세상에는 좋은 물건이 왜 그리도 많은 건지 보는 족족 다 사고 싶어지는 것이었다. 째깍째깍 초침 소리, 지금 꼭 사야 할 이유를 대는 그럴듯한 말솜씨에 넘어가 물건을 사기 시작했다. 나중에는 필요 여부를 떠나서 좋아 보이면 습관적으로 샀던 것 같다. 반품하면 되니까. 한두 번밖에 안 쓸 물건, 대량구매로 다 쓰지도 못하고 쟁여둔 물건들, 기억하지 못하고 또 사버린 물건까지 집안 곳곳에 점점 상자들이 쌓여갔지만, 사들이는 일을 멈추지 못했다.

쇼핑중독자, 쇼퍼홀릭(shopaholic)이라는 신조어는 알콜 중독자를 뜻하는 알코홀릭(alcoholic)이라는 단어에서 파생된 말이다. 그건 쇼핑중독이 알콜중독만큼 심각하다는 의미일 것이다. 일각에서는 쇼핑중독을 정신질환에 포함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고 한다. 그러니 반드시 탈출해야만 했다. 하지만, 벗어나기가 쉽지 않았다. 결심하고 번번이 무너지기를 여러 번 끝에 `피하는 게 상책'이라는 결론을 내렸고 홈쇼핑 채널 전부를 목록에서 `지움'해버렸다. 보지 않으니 겨우 안 살 수 있게 되었다.

사실 유혹을 이기지 못한 데는 또 다른 이유가 있었다. 우리는 알게 모르게 늘 누군가의 분석 대상이다. 맞춤 정보와 서비스를 내세워 개인정보를 수집하고, 수많은 CCTV를 통해 행동 패턴을 연구 분석해 심리를 간파한 취향 저격 미끼가 끊임없이 눈앞에 던져진다. 상품 배치, 파격 세일 문구, 9자로 끝나는 가격대 등 교묘하게 의도된 고도의 전략 속 쇼핑은 이미 패배가 예정된 게임인 것이다. 자신도 모르게 다른 사람의 의도대로 쇼핑하는 꼴이다.

오늘 일만 봐도 어쨌든 피하는 건 완벽한 탈출이 되지 못한다. 의식 속에 깊이 자리 잡은 물욕을 근본적으로 없애야 가능할 것이다. 여름 이불은 그냥 덮기로 하겠지만 대신 몇 가지 확실한 다짐을 해본다. 뭐든 귀히 여길 만큼 적당히 갖기로 하자. 생필품이 아닌 이상 일단 세 번은 참아보고 그래도 꼭 필요할 때만 사자. 꼭 필요한 게 아니라면 공짜라도 취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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