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례없는 전염병의 세계적 대 유행으로 인해 우리의 삶에는 많은 변화가 일었다. 신조어도 무수히 생겨났고, 여론조사를 통한 갖가지 명목의 수치도 쏟아지고 있다. 며칠 전 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 연구팀에서 스트레스받는 강도에 대한 직업군의 순위와 수치를 발표했다. 자영업자가 1위, 무직 또는 퇴직자가 그 뒤를 이었고 3위가 주부였다.
가정 내에서 주부들의 불안과 걱정은 전보다 훨씬 심해졌다. 가족들의 위생, 일상이 바뀐 아이들과 함께하는 시간의 증가 등은 코로나19 이전보다 몇 배의 부담이다.
아이들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자. 학교·학원에 가지 못하는 아이들에게 학교와 학원은 학습하는 곳 이상의 무엇이 있는 장소다. 친구들과 뛰기도 걷기도 하며 서로 몸 부대끼며 에너지를 발산하기도 하는 시간이다. 부모님들과 선생님들의 시선에서 벗어난 자유로운 시간일 것이다.
6~12세가량의 아동기는 친구들과 만나 공감대 쌓아가며 정서 안정에 접어들고, 또래들과 어울리며 발달 성장하는 시기인데 그러지 못하니 아이들 또한 스트레스받는 강도는 주부들 못지않을 것이다.
이런 어려운 상황을 어떻게 다루면 좋을지 보여주는 그림책이 있다. 현실에서 화, 불안, 소외감 등을 안고 있는 주인공이 자신만의 애착 혹은 선망의 매개체를 타고 간 환상의 세계에서 욕구 욕망을 채우고 다시 현실로 안착하는 이야기인 판타지 그림책이다.
판타지 그림책 중에 가장 많이 찾는 책은 `괴물들이 사는 나라/모리스 샌닥 그림/글 1994'이다. 내가 읽고 자녀에게 혹은 손주들에게 물려주는 판타지 계의 스테디셀러, 몇 해 전에는 오바마 전 미 대통령 부부가 백악관에 초대된 아이들에게 읽어 줘 더 유명세를 탄 책이다.
바쁜 엄마에게서 소외감을 느낀 주인공 맥스는 집안에서 장난을 시작한다. 엄마의 “이 괴물딱지 같은 녀석!”이라는 호령에 “그럼, 내가 엄마를 잡아먹어 버릴 거야!”라며 맥스는 화를 표출한다.(버릇없고 당돌한 이 대목으로 인해 출간 당시인 1964년 미 도서관 사서들의 대출 금지 보이콧을 당한다.) 그 대가로 방에 갇히는 벌을 받는데 맥스는 울거나 의기소침해지지 않고 자신만의 상상의 세계로 들어간다.
내가 만든 나만의 상상의 세계! 그곳의 주인공은 `나'이고 뭐든지 해 낼 수 있는 세계다. 맥스도 덩치 크고 험악한 괴물들을 단숨에 제압하고 왕이 되어 그들과 한바탕 소동을 벌인다. 현실에서 억압받고 통제당하던 화를 상상의 세계에서 풀어낸다.
아이들은 내가 만든 세계에서 내가 만든 사건을 해결하며 나만의 시간을 보내는 동안 분노를 다스리고 나를 발견한다. 작가는 그 시점에 현실로 돌아오는 장치를 해 둔다. 저편 세계에서 풍겨오는 맛있는 냄새가 바로 그 장치다.
맥스의 긍정적 감정 변화는 모리스 샌닥의 기막힌 재치로 그림 곳곳에 숨어 있다. 선명해지고 커지는 달의 변화로, 맥스 곁으로 슬금슬금 다가오는 사람 발을 한 괴물로, 그림 프레임 크기의 변화로 작가는 보여준다. 독자는 그림만 읽어도 알 수 있다. 그러기에 상상력과 창의적인 스토리텔링이 가능한 책이며, 판타지 그림책에서 그림의 중요성을 여실히 보여준다.
일러스트레이터이자 그림동화 작가 강우현은 `몽상, 환상, 망상 무엇이든 좋다. 하루에 한 번쯤 그것에 빠져보자. 그것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어떤가! 적어도 스트레스 해소라도 될 것이다.'라며 판타지의 힘에 대해 말한다.
아이들뿐 아니라 어른도 해 보자. 글 텍스트에 익숙한 어른들은 쉽지 않다. 허나 그림을 읽으며 즐기면 된다. 교훈을 찾으려 하지 말고 재미를 찾으면 된다. 사람을 만나지 못하고 학교를 못 가는 상황은 우리 모두 겪어 보지 못 한 일 아닌가. 책에서라도 즐거움을 찾아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