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이 코로나 19의 여파로 꽁꽁 얼어붙었다. 외출을 극도로 자제하면서 외부와의 소통은 TV와 핸드폰에 의지하고 있다.
언제부턴지, TV 속 언어들이 낯설다. 생소하고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들이 많고 많다. 일없이 이리저리 채널이나 돌리다 그만두게 되는 시청은 나를 슬프게 한다. 외국의 전문용어는 물론이려니와 출첵(출석체크), 냉무(내용이 없다), 안습(눈물난다), 소확행(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 같은 신조어들이 한도 없이 쏟아져서 우리의 언어생활을 교란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처음 문학 공부를 시작할 때였다. 우리의 문학사에서 부동의 별로 회자 되는 백석 시인의 시집을 펼쳤을 때 한편도 제대로 이해할 수 없었다. 겨우 구한 평안도 방언 집을 곁에 두고서야 고개를 끄덕이며 몰입할 수 있었던 그때의 시 읽기, 그래도 지역마다 심했던 방언 때문이란 변명은 유효해서 기쁘게 공부했던 기억이 새롭다.
우리가 쓰는 언어들의 수명은 얼마나 갈까? 백석이 시집을 내고 50여 년이 지난 후 사전을 펼쳐 시를 이해했다면 2000년대의 언어로 빚은 내 시집은 몇 년 뒤쯤 사전을 펼쳐놓고 외국어 공부하듯 읽게 될 것인가? 하루가 다르게 변천하는 세상을 보면 30년쯤 뒤? 아니면 그보다 더 빠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서늘해진다. 쓸데없는 생각을 펴다 접으면서 아래 시를 읽는다.
재령 댁이/도둑가시풀 옷섶에 달라붙은 것도 모르고/제 가슴 으스러져라 두 팔로 엮어 껴안은 채/종종걸음으로 마실에서 돌아오고 있었다/뒷간에 다녀올 시간쯤 지났을까/더벙이 총각 서넛/서리한 닭 모가지를 틀어쥐고 앞서거니 뒤서거니 내빼던/발소리가 어지럽게 무더기져 지나갔다/잎담배 찌든 냄새는 여전히 사랑방쪽에서 바람을 밀었다//하현달과 함께 지켜보았던/기억들이 어제처럼 또렷하다//내가 너무 오래 살았다
- 시골 가로등. 김인남 시 전문
이 시는 4~50년대의 시골 풍경을 그 시절의 언어로 고스란히 재현해내고 있다. 마실이며 닭서리며 뒷간과 잎담배 등등 옛날 양반댁의 자개농처럼 고풍스럽고 반짝반짝 빛난다. 그랬었지, 가고 없는 따뜻한 것들아. “할머니 어디 가셨니?”하고 외출에서 돌아온 아버지가 물으시면 나는 곧잘 “마실 가셨는데요.”라고 대답했던 기억이 난다. `마실' 얼마나 정겨운 말인가? 언제부터 어디에 휩쓸려 파묻혔는지 요즘은 아무도 사용하지 않는 `마실'이란 말.
사전을 펼쳐 보았다. `마실; 마을의 방언'이라 쓰여 있다. `마실'은 방언이 아니다. 방언이 어느 지역에서만 국한되어 사용되는 언어를 칭하는 것이라면 `마실'은 이 조건에 맞지 않는다.
내가 살면서 만났던 경상도와 전라도 그리고 충청도 사람들이 두루 사용했으며 위에 인용한 시를 쓴 김인남 님은 이북이 고향인 사람이다. 이를 미루어 봐도 전국에서 사용했던 순 우리말이 분명하다. 명사인 `마을'의 방언 `마실'이 아니라 `마실가다'란 독립된 동사로 쓰였던 것이다. 생활환경의 변천에 의한 자연스런 도태가 시작된 언어일 뿐이다.
내로라하는 한글학자님들이 모여서 규정지어놓은 사전 속 `마실”을 틀렸다고 소리치는 내 행위는 계란으로 바위 치기 같은 것일 것이다. 신조어라면 몰라도 다 사라져가는 마당에 쌍지팡이 짚을 일도 아니다. 다만, 사라져가는 순 우리말이 안타까워서 토로하는 아쉬움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