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토머리에 우리는 차
해토머리에 우리는 차
  • 이연 꽃차소믈리에
  • 승인 2025.02.25 1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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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문앞에서

더딘 걸음으로 봄이 오고 있다. 우수가 지난 지 여러 날이 지났지만, 여전히 바람은 매섭고 차다. 이맘때쯤 항상 입안에서 맴돌며 이런저런 생각에 빠져들게 하는 낱말이 있다. 해토머리. 아지랑이. 보리밭 밟기. 버들피리. 겨우내 꽁꽁 얼었던 땅이 녹아서 풀리기 시작할 때쯤을 해토머리라 한다. 우수가 지나면 얼었다 녹기를 반복한 땅은 진저리를 치듯 부풀어 오르고 겨울을 보낸 보리밭 흙들도 부풀어 오르며 잠자던 뿌리들을 깨워 놓는다. 잠에서 깨어난 보리 새싹들과 푸석거리는 흙 위로 드러난 뿌리 사이사이로 찬바람이 휘감아 들어 괴롭히기 시작할 때다. 땅속에 튼튼히 뿌리를 박고 땅의 기운을 받아들여 싹을 키워야 하는 시기에 그야말로 날벼락을 맞은 거나 마찬가지이다.

해토머리쯤, 학교에 가면 선생님들은 아이들을 이끌고 보리밭에 일렬로 줄을 세웠다. 그리고 푸른 보리밭을 꾹꾹 열심히 신나게 밟으라 했다. 부풀어 올라 폭신거리는 보리싹을 밟는 일은 신이 났다. 교실 밖으로 나온 아이들의 재잘거림이 고랑 이쪽에서 저쪽 끝까지 푸른 보리 새싹 사이로 넘실거렸다. 오래전 시골에 살았던 사람들이라면 아마도 푸르게 자라나는 보리밭 밟기 추억을 간직하고 있을 것이다.

새싹 보리로 덖은 차를 우린다. 이런저런 추억을 떠올리며 음미하는 차 맛은 더 향기로운 법이다. 하지만 보리에 관한 추억들은 향기롭다기보다는 가슴이 아린 기억을 더 많이 듣게 된다. 보릿고개를 겪어낸 배고픔의 세대여서 더 그럴 터였다. 나 역시도 어린 시절 쌀밥보다는 보리밥을 더 많이 먹으며 자랐다. 지금도 보리쌀의 거무튀튀하고 꺼끌거리는 느낌을 싫어해서 보리밥을 선호하지 않는다. 친구들과 별미를 먹자며 기껏 보리밥집에 가서도 “저는 쌀밥으로 주세요”를 외친다. 하지만 보리쌀이나 보리 새싹에 여러 가지 이로운 성분이 많이 들어 있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여린 새싹 보리 순으로 차를 덖는 일도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잘못 익히면 풋내를 잡지 못할 뿐만 아니라 맛을 내기 위해 유념도 필요하며. 자칫 방심하면 태울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차를 덖고 우려 음미하는 이유는 자연이 우리 인간에게 베푸는 그 모든 것이 아름답고 귀하게 여겨지기 때문이다. 잘 덖어진 차를 마주할 때 그 향기와 맛뿐만 아니라 오묘한 빛깔에 스며들어 마음에 평화를 느낄 때 차의 진정한 가치가 있음을 어렴풋이 알아가는 중이다.

너 나 할 것 없이 스트레스가 많이 쌓여 힘들다고 외치는 시대가 되었다. 마음이 지쳐가고 있다는 이 의미이기도 하다. 이럴 때 잘 덖어진 차 한잔 우리며 찻물이 우러나는 시간, 은은하게 퍼지는 향기를 폐부 깊숙이 마시며 음미하는 시간을 가져 보시라. 잠시라도 마음의 평화가 깃들게 된다면 그 또한 건강을 위해 보약을 먹은 거나 다름없을 것이다.

아무리 차갑고 매서운 바람에 봄의 걸음걸음이 늦어져도 경칩이 멀지 않았고 어두운 땅속에서는 봄이 들썩이며 걸음을 재촉하고 있을 것이다. 이에 화답이라도 하려는 듯 냇가 버들가지에 물이 오르기 시작하고 아지랑이 피어오르면 봄빛은 더욱 짙어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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