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수 년 전 청명학생교육원을 처음 만들면서 그곳에서 근무했다. 그런데 그동안 근무했던 여느 임지와는 달리 그곳을 떠난 이후에도 나는 한동안 그곳엘 갈 수가 없었다. 살면서 그런 느낌은 처음이었기에 지금도 나는 그때의 마음을 뭐라고 설명할 수가 없다.
가을이 시작되고 얼마나 되었을까? 통화하던 중 불쑥 어머니가 말씀을 꺼내셨다. “언제 섬진강에 한번 갔다오자.” 얘기의 요지는 동생들하고는 다 다녀왔는데 나하고는 한 번도 섬진강에 가보지 못했으니 나랑 한 번 꼭 가보고 싶다는 것이었다.
나에게 섬진강은 여느 강과 다름없는 여러 강 중의 하나지만 어머니에게 섬진강은 특별한 의미가 있는 강이었다. 어쩌면 내가 청명학생교육원을 떠난 이후 한동안 그곳을 찾지 못했던 것처럼 어머니도 젊은 시절 이후 오랫동안 섬진강을 찾지 못하셨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섬진강이 어머니의 삶에 깊은 관련이 있는 강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은 다 크고 나서였다. 명절날 식구들이 모여서 이야기를 나누던 중 언젠가 어머니가 당신의 젊은 시절 고생 이야기를 꺼내신 적이 있었는데 그때 어머니의 이야기를 듣고는 섬진강이 어머니의 삶에 깊이 자리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노점상가에서 의복을 팔던 시절, 팔아야 할 물건을 사러 서울에 갔다가 소매치기를 당했던 일, 그 후 잇따른 재앙으로 죽을지 살지를 고민했을 만큼 가장 어렵고 힘들었던 시기에 결국 남은 옷 보따리를 들고 섬진강을 건너 산마을을 돌며 행상을 했었던 이야기. 그러다 지인을 만나 그 일을 접고 새롭게 식당을 개업해서 빚을 갚고 우리를 키우셨다는 이야기들이었다.
어머니의 삶에서 섬진강은 삶의 가파른 고개이자 전환점이었던 것이다. 그 이야기를 듣고는 어머니가 다니셨다는 섬진강을 꼭 한 번은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던 차였다. 그러면서도 막상 섬진강을 찾지 못하고 미루고 있었는데 어머니가 먼저 섬진강을 가자고 제안하셨으니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그러자고 대답을 하고 나니 여러 감정이 교차되었다. 더 늦기 전에 지난날 어머니가 들려주셨던 섬진강의 이야기로 곡을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어머니의 이야기를 떠올리며 가사를 쓰고 곡을 붙였다. `섬진강 덕이'라는 노래를 그렇게 만들었다.
10월의 마지막 주말 가을 햇살이 너무 좋아서 어머니와 함께 섬진강에 다녀왔다. 가고 오는 내내 차 안에서 `섬진강 덕이'라는 노래를 어머니와 함께 듣고 또 들었다. 섬진강에서 어머니는 어떤 마음이셨을까? 다른 말씀 대신 연신 햇살이 좋다는 말씀만 자꾸 하셨다. 따사로운 가을 오후의 햇살처럼 어머니의 가슴도 그렇게 따사로웠으면 좋겠다. 섬진강은 이제 다른 강들과는 다른 강이 되었다. 나에게 섬진강은 어머니의 강이다.
햇살이 좋은 날은 햇살 좋아서, 바람이 부는 날은 바람 불어서
지난날 내 모습이 보고 싶으면 섬진강에 간다
연분홍 꽃잎들은 흩날리는데 흐르는 물을 보며 울던 덕이야
어떻게 살아야 할지 길을 몰라서 울었던 덕이야
그러다 한순간 떠오른 얼굴들, 초롱한 눈망울, 안쓰런 상처들, 상장을 건네던 고사리 손
보따리 이고 지고 무작정 산마루 넘어 갔었지 저 멀리 섬진강 산따라 흘러가더라
고단한 내 삶의 고갯길 그렇게 넘어갔었지 내 생애 봄날을 그렇게 그렇게 살아왔지
강물에 노을진다 낙엽도 지는구나 봄날은 갔지만 가을도 예쁘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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