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인, 지성인, 교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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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영순 문학평론가
  • 승인 2024.03.28 1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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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즈포럼
전영순 문학평론가
전영순 문학평론가

 

며칠 전 일본 최고의 명문대학으로 알려진 OO대학교 교수 정년 퇴임식에 참석했다. 퇴임식이 끝나고 2차로 식사를 했고, 3차로 노미카이(のみかい)가 있었다. 우연찮게 3차까지 함께하면서 그들이 오가는 대화와 동태를 지켜봤다. `지식, 지성, 교양이 함께하는 자리가 바로 이 자리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에 돌아와 우리나라 대학교 사제 간에 대해 생각해 본다. 학교는 외관상 건물에 불과하지만, 그 안에 담고 있는 의미는 자못 크다. 스승과 제자 사이에서 매개역할 하는 학문은 세상을 이롭게 하는 빛이자 우리의 미래다.

우리는 왜 대학에 가는 걸까? 대학을 졸업하면 과연 배운 것을 실천하며 사는지?에 대해 질문을 던져본다. 대학마다 전달하고자 하는 뜻은 우리나라나 외국이나 크게 다르지 않다. 우리나라 대학교와 외국 대학교 몇 곳의 교훈을 살펴보면 무엇을 전달하고자 하고자 하는지 알 수 있다.

`덕성·창의·봉사·실천', `사랑·진리·봉사', `참·빛', `성·신·의', `진리·사랑·봉사', `진리와 봉사', `자유·정의·진리', `인의예지', `사랑의 실천', `진리·평화·창조', `진리·창조·봉사', `지혜·자비·정진', `진리·사랑·봉사', `진리·정의·사랑', `성실·협동·창의', `인격도야·학술연마·사회봉사', `진리·긍지·봉사', `진리·봉사·자유', `성실·인화·창조', `창의·열정·봉사', `진리는 나의 빛', `큰 뜻을 품어라',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진리에 순종하라', `의에 죽고 참에 살자'

위 어휘들은 학문의 전당, 우리나라의 대학교 교훈이다. 참다운 의미를 담고 있는 교훈은 앞뒤 순서가 바뀔뿐이지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은 거의 비슷하다. 교훈을 통해 학교의 성향이 드러난다. 가장 많이 거론되는 단어는 진리, 봉사, 사랑, 창조, 창의 순위다. 외국 대학교도 우리와 별 차이가 없다. `지혜로운 연구 역풍', `진리는 나의 빛', `교육중시 학생중심 지역공헌', `지역에 살면서 세계로 뻗어나가자', `진실', `정신과 손', `인,의,예,지' 등이 있다. 어느 나라든 학생들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정신은 비슷하다. 쉽게 말해 학교는 지식만 전달하는 기관이 아니라는 것이다. 가장 이상적인 학문은 건강한 몸과 온전한 정신으로 연마한 진리를 사회에 봉사하는 것이다. 십 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뭇 어르신들이 말했지만, 급변하는 현실에 우리의 정신과 사고는 일 년이 무색할 정도다.

학생이 선생님을 가르치러 들고 선생이 학생들 눈치를 봐야 하는 시대, 설익은 지식으로 저만의 잣대로 세상을 해석한다. 탐구해야 할 진리도 사제 간에 지켜야 할 거리도 멀기만 하다.

대학에서 전달하고 싶은 바가 바로 교훈의 의미가 아닐까? 어쩌면 우리는 지성인, 교양인을 지식인으로만 착각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나와 너, 우리에 대한 깨달음이 아니라 기계적으로 학습된 지식, 단순한 앎만을 우선순위에 놓고 사는지 모르겠다. 지식계급으로 사회적 임무를 수행하는 지식인이 아니라 앙가주망을 깨닫고 진리를 억압하는 것들에 대항하며 지식과 지성, 중용의 정신으로 절제하며 질서를 잡아가는 교양인이 되라고 대학은 바란다.

정년으로 퇴임하는 교수님의 마지막 연구발표를 듣기 위해 강당은 전국에 흩어져 있던 제자들로 가득 찼다. 열한 명의 노벨상을 배출한 OO대학교 출신 학생들은 긍지를 갖고 분야별로 전국에서 인정받으며 활약한다. 강연이 끝나고 식사는 호텔 식당에서 있었다. 식사하기 전 퇴임 교수님의 말씀과 제자 두 명이 대표로 감사 인사를 했다. 제자 한 사람 한 사람의 사연을 제작한 영상을 감상했다. 3차로 노미카이에서 스승과 제자, 선후배 간의 이야기로 분위기가 무르익었다. 교수님은 온화한 표정과 소탈한 자세로 학생들을 응대하셨고 학생들은 존경한 마음으로 스승님을 응대했다. 그들 사이에서 나는 지식인이 아닌 지성인과 교양인이 갖춰야 할 덕망을 읽었다. 우리가 보기에는 좀 야박하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식사비는 만 삼천엔, 노미카이(のみかい)는 사천 엔씩 스승과 제자 모두 당연하다는 듯이 지급하고 소크라테스의 “나는 내가 아무것도 모른다는 걸 안다”며 각자 일터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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