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수 <옥천삼양초 사서교사>
우리 집에는 꼬마 아이 둘이 있다. 지금은 우연한 기회에 집에서 TV가 사라졌지만 녀석들이 IP TV에서 유·무료로 제공하는 유아용 프로그램에서 엄마가 보는 각종 드라마까지 모두 섭렵했던 게 불과 얼마 전 일이다. 이 방 저 방에서 금방 난리법석이다가도 TV만 켜지면 그 속으로 얼마든지 들어갈 수 있다는 기세로 달려나와 그 앞에 나란히 앉는 걸 보면 중독도 저런 중독이 없다 싶을 정도였다. 하긴, 그건 TV 볼 때 투영된 내 모습이기도 했다.
프레임까지 온통 까맣던 그 TV에서 마지막으로 봤던 드라마가 노희경 작가의 ‘괜찮아 사랑이야’였다. 스피드한 시대에 사는 우리가 그리 길지도 않은 제목이지만 ‘괜·사’라고 줄여서 애칭처럼 불렀던 그 드라마. 드라마에 대한 관심은 대본을 쓴 작가에 대한 관심으로도 이어져 올 초 개정판으로 발간된 작가의 에세이집 ‘지금 사랑하지 않는 자, 모두 유죄’(노희경, 북로그컴퍼니)로 이어졌다.
지난 2008년 출판된 적이 있던 동일한 제목의 ‘지금 사랑하지 않는 자, 모두 유죄’에 이어 이번 개정판에도 작가의 깊이 있는 내면과 사랑, 그리고 드라마 작가로서의 열정이 담겨 있다. 개정판에는 10개의 새로운 에세이가 실렸는데 작가의 진솔한 내면과 작가가 한 줄의 대사를 쓰기 위해 자기 자신과 다른 사람들의 삶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치열한 고민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
책을 읽다 보면 나도 모르게 드라마 속에서 주인공들의 입으로 전해지던 작가의 말들이 바로 옆에서 이렇게 속삭여준다. “사랑하라. 그리고 이해하라. 청춘이 아프지 않다는 건 새빨간 거짓말이지만 살아보니 그런 게 인생이더라.”
작가의 에세이를 보면서 뜻하지 않게 위로를 느꼈다. ‘남의 불행은 곧 내 행복’이라는 단순한 비교 때문이 아니라 작가가 보여주고 싶어한 삶이라는 것 혹은 사람에 대한 이해가 가슴에 와 닿았다. 사람은 원래 누구나 아프다는 것, 누구나 크고 작은 ‘트라우마’가 있다는 것, 하지만 그렇다고 쉽게 좌절하거나 포기하지 않고 끈질긴 생명력으로 주어진 소명을 다하며 사는 것이 인생이라는 것… 노희경 작가와 나 역시 많고 많은 사람 가운데 하나라는 사실 말이다.
노희경 작가의 ‘괜찮아 사랑이야’ 드라마를 통해서도 그 생각을 엿볼 수 있는데 겉보기엔 멀쩡하지만 사실 알고 보면 실체는 숱한 상처와 트라우마로 인해 정신적 결함이 있는 주인공이 있다. 스토리가 점점 전개되면서 사랑을 할 때의 설렘이 아닌 가늠할 수 없는 불행으로 치닫는 것 같지만 작가는 말한다. 사랑하니까, 그 모든 것 OK! 그리고 주인공들이 서로의 상처를 할퀴고 생채기를 내는 것이 아니라 이해하고 보듬다 보니 종국에는 상처를 치유하며 정말로 괜찮아지는 행복한 결말이 됐다.
경쟁사회에 돌입하면서 의지하거나 쉴 곳이 없이 너나 할 것 없이 지쳐 있는 것 같다. 원래 거북이처럼 느린 내게도 사회는 자꾸만 앞만 보라고 다그친다. 그러나 자세히 뒤돌아 생각해보면 나를 다그치는 그 주체는 사회라는 거대한 이름으로 포장된 나 자신일 경우가 많다. 뭔가 마음이 분주하니 주변 사람 챙기기에 여력이 없었다. 하지만 노희경 작가의 글을 보니 원래 사는 것은 다 분주하고 힘든 것이란다. 그래도 본인이 감당할 만큼 주워진다고 했던가.
행복과 사랑도 누가 가져다주는 것이 아니라 본인 스스로 만들어가는 것 같다. 바로 지금 이 순간에도 머릿속에 제일 먼저 떠오르는 두 사람, 잘해 낼 수 있으려니 내게 너무도 소중한 장난꾸러기 남매 둘이 태어난 것이겠지. 가끔은 내 편이 아닌 남의 편 혹은 아이 편 같은 남편도. 사랑한다고 말해줄 수 있을 때 아낌없이 “사랑해”라고 표현해 보는 그 시작을 당장 오늘로 해야겠다.
난 사랑에 관해서는 무죄이고 싶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