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은 새로운 만남이다. 뜻하지 않은 인연을 만난 새로운 사실을 깨닫고 성찰의 시간을 갖는다.
삼례책마을은 일제강점기 수탈의 양곡창고를 개조해 조성한 공간이다. 문화예술 공간으로 탈바꿈해 역사적 의미와 문화가 공존하는 독특한 공간으로 재탄생됐다.
북하우스, 한국학아카이브, 북 갤러리, 책마을센터, 책 박물관 등으로 운영되고 있다.
완주군의 문화예술정책이 박대헌 관장을 만나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문화예술 공간이 됐다.
개인이 소장한 고서는 아무리 귀하다 해도 개인 서재에 숨어있으면 아무 소용없다. 그 가치를 인정하고 활용하는 사람의 손에 들어가야 생명력이 살아난다.
박 관장이 책과 인연을 맺게 해 준 이는 변영로 시인이다. 고교 시절 국어 선생이 들려준 변영로 시인 자신의 술주정 인생을 흥미진진하게 풀어놓은 수필집 「명정 40년」 책 한 권이 그를 고서 수집가의 길로 이끌었다.
1953년에 발간된 책을 구하러 3년간 청계천 헌책방을 뒤지던 고등학생은 책 한 권, 한 권에 깃든 영적인 비밀이 젊은 그의 가슴에 파고들어 고서의 세계에 빠져들고 말았다.
대학을 그만두고 고서 수집에 뛰어들었다. 처음엔 쉬워 보였으나 만만치 않았다. 독학으로 한학과 영어를 공부했다. 방송통신대, 동국대 신문방송대학원에 들어가 틈틈이 책에 관한 지식을 쌓아갔다.
책을 찾아 떠난 세계여행을 하면서 말로만 듣던 책 마을을 네덜란드에서 만났다. 자연경관과 책이 어우러진 아름다운 책 세상을 한국에 만들겠다는 꿈을 가졌다.
옛 책의 아름다움과 가치가 점차 잊혀 가는 안타까운 세태에 박 관장이 소장한 고서의 가치와 박 관장의 책 사랑의 마음을 귀하게 여긴 완주군이 박 관장에게 먼저 손을 내밀었다. 책과 사람, 책과 자연, 책과 역사가 어우러진 삼례책마을은 전국의 많은 사람이 찾아오는 명소가 됐다.
북 갤러리에 「세잔이 보인다-19세기 프랑스 명화전」이 열리고 있다. 세계미술사의 거장 마티스, 르누아르, 샤갈, 모네, 피사로, 위트릴로, 브라크, 밀레, 세잔, 마네, 등 19세기 인상주의 전후 시기에 활동한 25명의 작가 32점의 유화 작품이 전시돼 있다.
박 관장이 직접 수집한 진품이다. 박 관장은 천천히 감상하라며 전시실을 나간다. 그의 열정과 애정이 깃든 작품을 감상하면서 관람객에 대한 따뜻한 배려의 사랑을 느꼈다.
북 갤러리 큐레이터에게서 박 관장이 걸어온 삶의 이야기를 자세히 전해 듣고 나니 박 관장의 집념이 새삼스럽다.
박 관장의 삶을 곱씹으며 책 박물관 전시실로 들어섰다. 「안서와 소월, 시 <못 잊어>는 김억 작품」전은 안서의 편지와 관련 자료를 통해 <못 잊어>는 김억의 작품이라고 주장하면서도 두 사람이 사제지간을 뛰어넘는 문학적 동지였음을 강조한다. 사제의 정과 한국인의 정서를 지배하는 한국 근대시문학을 배태(胚胎)한 이유를 엿본 시간이었다.
삼례책마을은 개관 이후 다양한 주제의 고서 전시를 비롯해 학술세미나, 고서대학, 북 축제 등 다양한 문화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과거의 아픈 삶의 흔적을 간직한 공간에서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며 문화와 문화를 이어주는 현대의 삶을 담아내고 있다.
삶의 가치는 사람마다 다르다. 내 삶의 여정이 행복하다는 자부심으로 살아가지만 내가 모르고 있던 분야의 새로운 인연을 만나면 여물지 못한 내 삶이 잔망스레 흔들린다.
세상 엿보기
저작권자 © 충청타임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