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고르는 한국인이라면 한번쯤 들어본 이름이다. 조선을 `동방의 등불'이라고 표현한 시인이라고 의무교육 교과과정에서 접했을 것이다. 그런 이유에선지 한국에서는 그의 시까지는 잘 몰라도 이름만큼은 잘 알려져 있다. 필자 기준 `인도사람'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인물 투톱은 여전히 간디와 타고르다.
타고르는 1861년 인도 벵골 캘커타에서 태어났다. 그의 집안은 인도의 신분제인 카스트 제도 최상위 계급이었다. 이 말은 타고르는 브라만 가문의 있는 집 자식이었다는 얘기다. 집안에 하인도 많았다. 전해지는 타고르의 청년시절 일화가 있다. 하루는 하인들 중 나이가 많은 하인 한명이 아무 말도 없이 출근 시간인 아침이 다 지나도록 나타나지 않았다. 시간이 꽤 흘러 늦은 저녁시간이 다 되어서야 모습을 나타낸 하인은 늦은 연유에 대한 일언반구도 없이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자신의 일을 해나갈 뿐이었다. 타고르는 출근 시간을 훨씬 넘겨 늦게 나타나서는 아무런 변명도 이유도 말하지 않고 너무도 태연하게 행동하는 그의 태도에 너무도 화가 났다. 급기야 그를 해고해야겠다는 생각에까지 이른다. 참다못해 하인에게 다가가 소리친다.
“여기가 당신 마음대로 오고 싶으면 오고 가고 싶으면 가는 곳인 줄 알아! 당신은 이 시간부로 해고니까 다 그만두고 여기서 당장 나가!”
하인은 타고르의 말에 아무런 대꾸도 없이 자신이 하던 일을 계속 해나갔다. 이런 행동이 타고르를 더욱 화나게 했다. 타고르는 더 크게 고함친다.
“지금 내말을 무시하는 거야! 내말이 말 같지 않아! 당신은 해고라니까!”
그 순간 하인은 하던 일을 멈추고 두 손을 곱게 모아 고개를 조아리며 말했다.
“주인님 제가 아무 말씀 못 드리고 늦게 나온 것은 분명 제 잘못입니다. 변명처럼 들리시겠지만 늦은 이유가 있습니다. 제 딸아이가 어젯밤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아이를 묻고 오느라 늦었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주인님.”
하인의 말을 듣는 순간 타고르는 그 자리에서 그대로 굳어버렸다. 20대시절 일이었다. 그때 그는 어렸고 게다가 경솔했다.
`그 때 내가 무슨 짓을 했던가. 나는 한 존재에 대해 내 방식대로 해석하고 내 방식대로 판단을 해버렸다. 나는 인간이 얼마나 잔인하고 폭력적일 수 있는지 처음으로 깨달았다. 나 자신에게 실망했다. 내가 이 정도 수준밖에 안 되는 존재이고 인간인지에 대해 심히 생각했다. 스스로에 대해 깊은 절망감을 가졌다. 그 일을 계기로 나에게는 하나의 습관이 생겼다. 누군가에 대해 바로 판단하고 윽박지르고 소리 지르고 내 방식대로 화를 내기보다는 한 발 물러서서 그 사람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를 먼저 알아보고 난 뒤 비로소 판단하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타고르가 그때의 일을 회상하며 쓴 글이다. 참회의 글이다. 그는 자기 갱신의 전환점이었다고 회고했다. 타고르는 1913년 시집 `기탄잘리'로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다. 이는 아시아인 최초의 노벨상 수상이며 그로인해 세계적인 시성(詩聖)의 반열에 오른다. 내면의 성장 없이 수려한 글발만으로는 이룰 수는 없는 일들이다. 그 일을 계기로 그는 깨달았고 분명 성장했다.
모든 인간은 완벽하지 않다. 이것이 타인에 대한 판단을 유보해야하는 단 하나의 이유이다. 우리 자신조차 순간순간 기분도 그에 따른 행동도 달라짐을 잊지 말아야한다. 한 사람을 지켜볼 때는 날씨처럼 바라봐야한다. 폭풍우 치는 하늘이 하늘의 본래 모습이 아님을 잊지 말자. 사람들은 자신의 실수에 대해서는 변호사처럼 행동하고 타인의 실수에 대해서는 검사처럼 행동한다는 말이 있다. 그리고 기억하자.
당신이 타인을 섣부르게 판단하는 행위는 타인도 당신을 함부로 판단해도 된다는 것에 대한 암묵적 동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