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저울은 수평이다
생명의 저울은 수평이다
  • 이영숙 시인
  • 승인 2022.09.25 1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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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엿보기
이영숙 시인
이영숙 시인

 

여름과 가을 경계의 어느 날이다. 산림교육전문가 과정을 함께 듣던 숲 동기들과 충북생물다양성보전협회 주최로 열린 `충북 생물종 다양성 탐사 대작전'에 진행요원 자격으로 참석했다. 충주 봉황 자연휴양림에서 진행한 다섯 개 모둠의 탐사 팀 중 내가 속한 곳은 전남대 함충호 선생님이 탐사 대장을 맡은 양서·파충류 팀이다. 탐사를 떠나기 전 인근 도서관에서 박시룡·박대식 선생님이 공저한 개정판 『열려라! 양서류 나라』를 다시 살펴보았다. 몇 해 전 문화체육관광부 선정 우수교양 도서라 학생들 수업자료로 썼던 책이다.

양서류는 환경변화에 매우 예민한 환경 지표 종으로 생태계를 지탱해주는 중간자다. 그렇기 때문에 양서류가 사라지면 인간의 삶도 온전하지 못하다고 한다. 습지와 계곡을 따라 올라가면서 참개구리, 옴개구리, 도마뱀, 두꺼비, 꽃뱀이라 불리는 유혈목이 등을 채집하여 관찰 통에 넣고 자세히 살핀 후 그림으로 그려보는 시간도 가졌다.

개구리 같은 양서류는 물과 땅을 오가며 생활하는 특성으로 공기와 수분이 잘 통과하도록 피부가 얇고 매끈하고 촉촉하며 피부 호흡과 폐호흡을 하면서 주로 습한 곳에서 산다. 뱀 같은 파충류는 땅위에서 생활하기 때문에 피부가 두껍고 수분이 빠지는 것을 막기 위한 비늘로 덮여 있으며 폐호흡을 한다.

팀원 중 한 사람이 학생들에게 질문을 던진다.

“비만 오면 개구리가 더 크게 우는 이유는 뭘까요?”

제 몸보다 큰 장화를 신고 계곡물에 찰방거리던 여학생 하나가 빙글빙글 돌며 비 온다고 좋아서 노래하는 거라고 말한다. 개구리들이 빗물에 젖으면 피부를 통한 산소 호흡이 왕성하기 때문이란다. 올챙이 때는 아가미로 호흡하다가 자라면서 허파가 생겨 공기호흡하며 땅에서 살게 되는데 폐호흡과 피부호흡을 하는 개구리는 비가 오면 컨디션이 좋다는 것이다. 그래서 운다고 하면 안 되고 노래한다고 해야 한다니 일면 맞는 말이다.

일상에서 부지불식간 쓰는 표현 중 인간 중심의 해석이 참 많다. 언젠가 가까이 지내는 문우가 `물고기'라는 명명을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물고기 입장에선 기분 나쁜 호칭이니 `물꼬리'라고 고쳐 불러야 한다는 것이다. 검색하니 물고기의 사전적 의미는 물속에 사는 동물의 통칭이라고 나온다. 몇몇이 그렇게 부르다 보면 물고기 대신 `물꼬리'가 될 지도 모른다.

개구리 탐사가 끝나고 휴양림 위쪽으로 오르는 길목에 율모기라는 유혈목이가 자주 띈다. 녹색바탕에 불규칙한 붉은 무늬가 화려하여 일명 꽃뱀으로 불린다. 예쁘다는 의미일 터인데 남자에게 의도적으로 접근하여 금품을 우려내는 여자를 이르는 표현으로 비유되니 유혈목이도 억울한 동물 중 하나다.

초등 시절 친구들과 풀꽃 찾기 놀이를 하던 중 방죽 둑을 뛰다가 똬리를 튼 뱀을 밟은 적이 있다. 그 이후 뱀만 보면 유난스레 질겁했다. 뱀은 위협을 느끼지 않는 한 사람을 먼저 공격하지 않는데 오랜 세월 뱀에 대한 트라우마를 지닌 것은 기독교적 해석도 한몫한다. 오전과 오후에 걸쳐 뱀을 관찰하고 직접 만져보는 과정을 통해 신기하게도 뱀에 대한 인식이 바뀐다.

프로이트는 억압된 감정은 반드시 귀환한다고 했다. 뱀에 대한 왜곡과 불편한 무의식이 치유되고 새롭게 인식한 이번 `충북 생물종 다양성 탐사 대작전'은 개인적으로도 성공이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저마다 존재 이유가 있으며 생명의 저울은 크든 작든 수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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