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8년 퇴직 후 바둑연구 매진 … 제2의 인생
장수집안 내력 … 구순 믿기지 않을 만큼 건강
혼밥이 일상 … 매일 신문 정독·문화면 스크랩
“분수에 맞게 사는게 가장 잘 사는 것” 조언도
어떻게 지내십니까의 4번째 주인공은 이승우씨다. 1931년생인 그는 평생 공직에 재직하며 단양·음성군수, 제천·충주시장 등을 역임한 충북 지방행정의 산 증인이기도 하다. 1988년 퇴직 후에는 본격적으로 바둑연구에 매진하며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다. 일본을 비롯해 중국, 유럽 등지로 바둑 탐방을 하며 1500여 점의 바둑 사료를 수집해 번역했고, 충북도정사를 책으로 남겼다. 한국 역사에서 가장 암흑기였던 일제강점기에 태어나 6·25전쟁과 가난을 경험하였고, 한강의 기적이란 말처럼 산업사회로의 눈부신 성장을 지켜본 그다. 역사의 증인이 된 그를 2013년 충북의 기록인으로 만난 후 7년 만에 다시 만났다.
“어떻게 지내느냐고? 허허, 하루하루 평안하게 지냅니다. 아무런 욕심 없이 지낸다는 게 이렇게 평안하네요.”
말끔한 정장차림으로 환대해 주는 그는 구순이란 나이가 믿기지 않을 만큼 건강한 모습이었다. 코로나19로 건강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만큼 건강의 비결이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 집이 장수집안이에요. 아버지도 할아버지도 모두 90살 넘게 사시다 돌아가셨어요. 따로 건강을 위해 운동하는 건 없어요. 좋은 유전자를 물려받은 것 같습니다. 아직도 매일 신문을 읽고, 책을 보고 글을 쓰는 것 보면 건강한 거죠?”
타고난 건강도 생활 습관이 중요하다는 그는 나이 들수록 하루 일과가 단순해지는 만큼 규칙적인 생활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만날 친구도 적어지면서 혼자 즐기는 법을 터득해야 한다고도 했다.
“아침 8시쯤 일어나요. 요즘 혼밥이 유행인데 저는 혼밥을 즐겨 먹습니다. 관직에 있으면서 혼자 끼니를 해결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보니 지금도 혼밥이 일상이죠. 간단하게 토스트와 우유로 식사한 뒤 오전에는 신문을 정독해요. 정치, 경제면도 놓치지 않지만, 문화면은 꼭 스크랩합니다. 오후에는 사무실에 내려와서 자료를 정리하고 책을 읽어요. 기억력이 좋은 편이라 기록을 남기려고 글을 쓰곤 합니다.”
가부장적인 시대를 살아왔지만, 그의 생활은 민주적이다. 식사도 가능한 한 스스로 해결하고, 아내의 생활도 존중해줘야 한다는 게 지론이다. 나이가 많아지니 쓸쓸함이나 외로움도 초월하게 된다는 그에게 좋은 친구 중 하나가 텔레비전이다.
“늙으면 만날 사람도 줄어들어요. 텔레비전이 좋은 친구입니다. 거짓을 꾸며내는 드라마보다 주로 영화와 스포츠, 바둑 채널을 봅니다. 요즘은 영화도 복고풍이라 옛 영화를 많이 틀어줍니다. 서부극을 좋아하는데 정의와 불의의 싸움에서 정의가 이기는 그 통쾌함이 좋습니다.”
나이가 들면서 운신의 폭도 좁아지지만, 불현듯 찾아온 코로나19로 활동 범위가 더 좁아졌다. 모든 세대가 느끼는 일상의 변화 폭보다 차이는 적겠지만, 그에게도 소소한 변화가 찾아왔다.
“모임도 나이가 들면 줄어들어요. 퇴직공무원 모임, 친구 모임, 바둑 모임이 몇몇 있었는데 코로나19가 확산되면서 모두 중단되었어요. 바둑을 좋아하지만, 기원에 가는 것은 좋아하지 않아서 바둑 친구도 줄었습니다. 유일하게 사무실에 와서 바둑을 두는 친구가 있었는데 요즘 발목을 다쳐 오도 가도 못합니다. 그런 나이가 되었어요.”
행정가로, 바둑인으로 최선을 다하며 살아온 그다. 삶의 긴 여정을 돌아본다면 스스로 가장 잘한 일은 무엇일까.
“퇴직 후 많은 사람이 이승우가 정치계로 갈 것으로 생각했어요. 당시 대부분 그렇게 정치에 입문했으니까. 나는 관직에 있다가 정치계로 가는 것에 대해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했거든요. 돌이켜 보면 가볍게 움직이지 않았다는 것이 자부심이기도 합니다. 자기 분수를 알고 흔들리지 않고 걸어왔다는 것이 가장 잘했다고 봅니다.”
인생의 파도를 넘어온 시간을 고요하게 응시하며 반추하고 있는 그가 인생 선배로서 후배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말은 분수다. 그는 “허황한 것을 쫓거나 과욕을 부려 실패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과욕을 부리지 말고, 큰 야욕도 부리지 말고 분수에 맞게 살라고 말하고 싶어요. 분수에 맞게 자기의 본분과 역할을 하면서 그때 그때 최선을 다하는 것이 가장 잘사는 방법입니다. 나답게 사는 것으로 평온을 찾아가길 바랍니다”라고 조언했다.
/연지민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