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1일은 대한민국 국군의 날이다. 한국군의 위용과 전투력을 국내외에 과시하고 국군장병의 사기를 높이기 위하여 지정된 국가 기념일이다.
국군의 날이 10월 1일로 정해진 사연은 민족의 비극인 6·25로 거슬러 올라간다. 소련군의 탱크를 앞세운 북한군의 남침으로 시작된 6·25 전쟁은 국군이 후퇴를 거듭하다가 낙동강을 최후의 방어선으로 마지막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자유 민주주의의 운명이 걸린 이 전쟁은 유엔군의 참전과 인천상륙작전으로 마침내 9월 28일 서울을 수복하고, 10월1일 마침내 한국군이 38선을 돌파해 북진을 시작한 날이다. 이 날을 기념하여 10월 1일을 국군의 날로 지정한 것이다.
북핵 문제와 북한의 미사일 발사로 한동안 남·북한의 화해와 평화의 분위기가 좀 더 발전하지 못해 안타깝지만 그래도 통일이 도둑같이 우리 민족의 선물로 올 것을 소망하고 기원할 수 있어서 다행스럽게 생각한다. 아울러 통일 이후의 여러 가지 상황에 관해 행복한 고민을 한다. 그중의 하나가 바로 국군의 날에 관한 것이다. 과연 통일 후 대한민국 국군의 날은 언제여야 할까? 대한민국의 정통성이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있다면 당연히 국군의 날도 대한민국임시정부 시기 한국광복군 창건일인 9월 17일로 해야 한다.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1919년 대한민국육군임시군제를 제정하여 군대 창설을 준비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계획은 여러 가지 어려움 때문에 실현되지 못하다가 1932년 윤봉길 의거를 계기로 중국정부의 지원과 협조를 받게 되자 본격적으로 추진됐다. 1937년 중일전쟁이 발발하고, 임시정부 청사가 대륙 여러 곳으로 피난처를 옮겨 다니는 어려운 상황에서도 군대 창설의 목표는 변함이 없었다. 우여곡절 끝에 중국의 임시수도였던 충칭에 정착하면서 1940년 9월 17일 광복군총사령부가 성립됐다. 1941년 12월 8일에 일본의 진주만 기습공격으로 미·일간 태평양전쟁이 발발하자, 임시정부는 12월 10일 대일선전포고를 발표하면서 연합군의 일원으로 당당히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것이다.
특별히 광복군은 우리의 힘으로 일본군을 몰아내고 독립을 쟁취할 계획을 진행하고 있었다. 김구 주석은 미국의 OSS책임자와 한미 간의 공동작전을 협의했고, 이들을 국내에 침투시킨다는 국내진공작전을 수행하기로 하였다. 그 내용은 시안과 푸양에서 OSS훈련을 받은 광복군에 각종 비밀무기를 주어 중국의 산둥에서 미국잠수함을 태워 본국으로 들여보내고 이들로 하여금 국내의 주요 기관들을 파괴하거나 혹은 점령하게 한 후에 미국비행기로 무기를 운반한다는 계획이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광복군의 국내진공작전 실현 직전 일본이 항복하고 말았다. 때문에 광복군도 무장을 해제한 상태로 귀국하였으며, 1946년 6월 해체되고 말았다.
한국광복군은 1907년 대한제국 군대가 해산된 이래 의병과 독립군의 전통을 이어받아 창설되었다. 그리고 광복군이 대일 무장투쟁을 전개한 것은 민족의 정통성과 국가의 법통성을 잇기 위한 호국의지의 발로라 할 수 있다. 때문에 이를 계승한 대한민국의 국군은 자주국방, 국토 수호의 기본적인 역할과 함께 인류 평화의 수호자로서 당당한 위상을 실현해야 할 것이다.
평화 통일과 한반도 번영의 시대를 열며 한민족이 하나 되어 전 세계에 선한 영향력을 행사하면서 말이다.